Maison Paul Bocuse Daikanyama - 2023년 겨울
보퀴즈! 그 이름에 어떤 부연 설명이 더 필요하겠냐만은 거인이 떠난 이후 그의 이름에 대한 의심은 계속되고 있다. 가장 먼저 <가이드>가 별을 하나 거뒀듯이. 후계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는 비단 보퀴즈 뿐 아니라 한 명의 거대한 인간으로 지탱되온 무수한 레스토랑들에게도 공통된 고민이다. 로부숑이 떠난 로부숑, 보퀴즈가 떠난 보퀴즈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가? 그가 만든 많은 요리들은 레시피의 형태로 영원히 남겠지만, 과연 인간 요리사가 가졌던 사상의 방향까지 무대 위에 남길 수 있을 것인가?
방문 전에
메종 폴 보퀴즈 다이칸야마(이하 "메종 폴 보퀴즈")의 예약은 전화 및 서드 파티 웹사이트 TableCheck에서 가능하다. 별도의 예약 확인 전화는 없다.
요리
메뉴는 점심 스페셜(JPY 6500)에 단품으로 VGE(JPY 7260)을 추가하였다.
이런 방식의 서비스에서 이런 방식의 요리가 제공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다. 한때 프랑스 요리의 진보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과도 같았던 보퀴즈이지만 현재 그의 이름 아래 만들어지는 요리가 추구하는 방향은 안으로부터의 지킴과 같다. 더 이상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기능에 충실하며 겹겹이 쌓인 경험이 주는 지혜에 밝은 요리, 보퀴즈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슈 반죽 안의 치즈가 흐르듯 녹지는 않고, 무스 역시 온도나 트러플의 가향이 최첨단의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큰 줄기 아래 잔물결로 지나갈 수 있다.
점심 때에는 전형적으로 껍질이 두텁게 발달한 빵 대신 가볍게 처리한다. 빵 속에서 반죽의 높은 수분이 느껴지기 직전의 정도.
"VGE"는 절반 사이즈로 리옹의 OG와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마티뇽으로 자른 야채와 콩소메부터 푸아 그라까지 비밀이 없는 수프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진지했는가. 지방을 한껏 머금은 패스트리 덮개는 리옹처럼-잘라낼 것인가? 도쿄에서는 자르지 않고 열었다. 크기가 작은 것도 있지만 패스트리의 지방과 빵이 스프에 스미면서 생기는 점도의 변화를 배제하는 의도가 크다. 또한 푸아 그라는 크게 잘라내는 등 결국 이곳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은 레시피가 아니라 요리의 의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의도, 사상, 아이디어, 감각의 재현은 높은 수준에서 성공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흔히들 VGE가 일본 요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고, 트러플 향에 취하는 음식이라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트러플을 사용한 뒤 뚜껑을 덮는 요리가 세상에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유독 그만이 옥좌에 올랐는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마지막 뉘앙스만을 남긴 베르무트를 머금은 미르푸아가 씹는 사이 후각을 반 발짝 더 나아가도록 자극하고, 푸아 그라의 지방은 후각만을 황홀하게 자극하고 곧 날아가 버리는 향의 덧없음을 메운다. 짧지만 명백한 서사가 있는 음식이기에 무대에 오를 자격이 있다. 물론 흔히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문학 작품도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옛 이야기가 되곤 한다. 그렇다고 작품이 가치를 잃지는 않는다. 작품의 평가는 무작위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재미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문짝 넙치 뫼니에르와 돼지 갈비 요리는 더 뒤로 갈 자리도 없는 전형적인 것 같지만 아주 그렇지는 않아서 마치 의도적으로 복각한 20세기풍을 느끼게 만든다. 가자미목 생선의 뫼니에르를 내되 잘 보면 보이지만 소스가 두 겹이다. 돼지고기에 곁들인 양파 타르트는 전체를 넣고 오븐에 굽지 않았으니 해체주의적 발상의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 접시 전체에서 초리조와 큐민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남부 요리가 가지는 특유의 강점, 개방적 사고에 대한 흔적을 열어 놓는다.
그럼에도 접시를 치우고 나면 남는 인상은 역시 20세기 프랑스이다. 실존하지 않았지만 실재하는 것 같은 감각. 이 주방은 20세기를 그리며 21세기를 살아가는 즐거움을 담은 요리를 한다.
서울에서는 부득이 생략되고 있지만 디저트 앞에 치즈가 위치하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관행만은 아니다. 남은 와인을 비우며 즐기는 여유도 있겠지만 디저트에 또 하나의 우주가 있는 프랑스식 만찬에서 치즈는 분명한 제 역할을 한다. 지칠대로 지친 후각 신경계에게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음식이지만 혀에는 외려 더욱 강렬한 것이 치즈가 아닌가. 모차렐라를 씹지 않는 이상에야.
따라서 역할에 어울리는 치즈란 존재하기 마련이며 치즈의 명성은 그러한 기준에 맞춰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물론 다른 치즈를 먹는 것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저녁 식사였다면 몽도르나 톰, 아니면 다른 것을 요청했을 지도 모른다.
캐러멜과 딸기라는 선명한 주제를 드러내는 한 접시가 달콤한 주방이 가지는 더 큰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캐러멜화 반응이 이끄는 쓴맛과 열매가 주는 신맛을 유쾌하게 배치한다. 신맛의 여운이 더 길게 빠지는 디저트는 역할을 전부 해내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의 질감을 다룰 줄 모르는 것만이 옥의 티이다. 사정이 있겠지만 걸어놓은 간판을 생각하면 꼼수라도 부릴 줄 알아야 한다.
총평: 메종 폴 보퀴즈는 리옹의 복제, 혹은 열화된 박제를 만드는 곳이라기보다는 보퀴즈風을 지향하는 요리를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재고하고 의심한다. 물론 완벽한 복제가 불가능하기에 선택한 방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의 요리는 유의미하다. 여전히.
분위기: 지나치게 노골적인 아르누보 분위기. 보퀴즈 본인의 사진을 본점보다 자주 볼 수 있다.
가격: 점심 JPY 4,000부터. 보퀴즈의 시그니처를 포함한 식사를 생각한다면 음료 포함 JPY 10,000 이상을 고려하는 것을 권한다.
음료: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궁색한데 보르도-부르고뉴를 벗어난 구성이 흥미를 끈다. 정작 나는 전형 중의 전형인 보르도 우안으로 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