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son Verot - 파테 엉 크루트

Maison Verot - 파테 엉 크루트

샤퀴테리에로서는 아마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지도와 유명세를 가지고 있을 질 베로가 이끄는 메종 베로지만, 정작 파리에서는 여느 때나 편안하게 방문해 원하는 것을 잔뜩 챙겨갈 수 있다. 전통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하입이 크게 오르지 않는 것은 우리와 비슷한 것일까.

한국에서는 메종조의 조우람 샤퀴테리에가 초반 이곳에서의 경력을 내세웠던 덕에 이름이 덩달아 알려진 정도일 뿐, 베로 자체에 대해서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베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돼지의 '노즈 투 테일'(Cochon de la tête aux pieds)이지만, 그보다도 메종조를 떠올리며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경험을 하고 싶었기에 식료품점에서 당근 라페를 구해 '조'스러운 한 끼를 차려보았다.

오리의 가슴살과 푸아 그라에 약간의 돼지고기 그리고 푹 절인 느낌의 무화과가 층층이 쌓인 파테 엉 크루트는 100g이 넘도록 넉넉한 두께로 잘라냈는데, 여러 레이어를 한 입에 맛보는 순간 느낄 수 있는 매력이 각별했다. 무화과가 푸아 그라를 전처리하는 달콤한 증류주의 뉘앙스를 당겨오고, 먼저 녹기 시작하는 푸아 그라를 만끽하고 나면 육향으로 입안이 가득찬다. 차가운 지방과 콜드 컷을 동시에 맛보면서, 오븐에 구운 반죽의 버터리한 느낌까지 세 종류의 쾌감을 만끽하는 것이 이런 요리의 기본적인 목표가 되는데 그 셋을 모두 넉넉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종종 어떤 파테들은 켜켜이 쌓는 단면의 모습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먹을 때에는 함께 먹는 즐거움이 모자란 경우도 있다. 마치 햄버거에서 쌓는 순서를 잘못 정한 경우처럼. 차라리 그런 경우에는 뒤섞어서 채운 다음 구운 스타일이었으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베로의 파테는 그런 우려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 위대함을 품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정도로도 충분히 전위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베로는 앞서 말한 노즈 투 테일 테린이나 포토푀 테린같이 놀라운 창작품들을 갖추고 있기에 이 한 조각만을 소개하는 입장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기 때문에 또 다음 여행을 기약하는 것 아닌가? 여러분에게도 이 글을 통해 파리라는 도시가 조금은 더 그리워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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