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네 - 나폴리 다음은?
앞선 식사 이후 갑작스레 가게가 긴 휴무를 가지게 되면서 마리오네에서의 다음 피자는 기약없이 미루어지고 있었다. 다시 가게의 문을 여는 날 솔직히 감상을 전할 자신이 없었다.
마리오네의 도우 상태에 대해서는 이미 다룬 바가 있으므로 굳이 그 부분은 재생산할 필요가 없고, 메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피자의 종류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중에서도 가장 발목을 잡는 종류는 이 프로슈토와 루꼴라Pizza Primavera였다. 이곳은 파르미지아노를 올리지 않지만 여러모로 라치오, 혹은 그 북쪽에 가까운 맛을 내는 레시피인데 한국에서는 피자 나폴레타나를 취급하는 곳에서도 대부분 이 메뉴를 내고 있다. 신선한 야채가 더해주는 다양한 질감에 더해 살짝의 쓴맛, 그리고 프로슈토가 전하는 강한 짠맛의 조화는 큰 얼개에서 비합리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피자로서 최선은 아니다. 부드러운 플랫브레드인 빵은 프로슈토를 씹는 도중에 완전히 소화될 준비를 마쳐 박자가 엇갈리는데, 껍질이 단단하게 발달한 빵과 햄이 이루는 조화에 비해 우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극적인 물성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연약한 햄을 화덕에 노출시키기에는 위험성이 크므로 진퇴양난. 기원이나 맛의 합리성 등은 제쳐두고서라도 마르게리타와 함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피자는 현지의 레퍼런스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서울에서 즐기는 피자로 자리잡았다면, 서울의 방법, 마리오네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반도의 남향을 향하는 다른 메뉴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시칠리를 넌지시 가리키고 있는 이 파스타였다. 크림과 피스타치오라는 두 재료를 이용해서 파스타의 맛을 내는 방법에서 아주 빗나가 있었는데, 전형적인 피스타치오 크림과 비교해 분태가 시각적인 자극을 더할 뿐 맛에서 피스타치오는 다른 어떤 견과류로도 대체 가능한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피스타치오의 복잡한 아름다움은 어디로 갔나. 물론 피스타치오의 수급 사정이 그 반도와 이 반도는 딴판이지만, 품질을 논하기 전에 로스팅과 분쇄 등 가공 과정의 문제가 훨씬 커보였다. 짠맛이 두 지방의 고소함을 당겨오고 음료가 부담감을 상쇄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파스타의 역량은 역부족이었다.
나폴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여기는 나폴리가 아니고 우리도 나폴리 사람이 아니다. 이곳의 음식 역시 나폴리에 꽁꽁 묶여있지만은 않은데, 그렇다고 나아가기에는 머리보다 다리가 앞서 나가고 있었다. "생면 파스타 바"의 시대에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무엇이 있겠냐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