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칼리 - 몰카헤떼 믹스토
무언가를 감싸서 먹는다(wrap)라는 행위에 있어서 타코와 쌈의 공통점을 발견한 「모모푸쿠」의 이야기는 벌써 전설이 되었으나 이국의 땅에서 모모푸쿠의 꿈은 쉬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타코를 가꾸기는 커녕 한국식 쌈이 과연 아름답게 번성하고 있는가?
그러한 와중에 또다른 쌈 요리를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릇 이름을 딴 이 요리는 주어진 속재료를 스스로 싸서 먹는다는 컨셉에 있어서는 우리의 전형적인 쌈을 떠올리게 하며, 열기를 보존하는 그릇에 의미를 둔다는 데 대해서는 돌솥비빔밥 따위를 떠올리게 한다. 마리네이드하여 저온에 천천히 익힌 고기가 유명한 타코와 달리 직관적인 조리를 거친 단백질을 주로 올리므로 우리네 쌈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외려 한껏 친숙하고, 그러한 쌈이 저녁의 만찬feast으로 주로 쓰인다니 이억만리 끝에 고향사람이라도 만난 기분이 아닌가!
한 쌈에 반드시 한 가지의 단백질이라는 황금률을 가진 우리의 쌈과 달리 씹히는 정도도 맛도 다른 여러 단백질을 한번에 우겨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몰까헤떼는 욕망의 길에 한 걸음 더 가깝다. 그러나 용기의 의의를 담은 점도 낮은 살사가 전체를 충분히 조미하고 있다는 인상은 아니었는데, 불에 그을리는 것만으로 야채의 단맛이 충분히 나오지 않다보니 또다른 자극을 찾게되는데, 그것이 모자랄 때 자연스레 짠맛의 측면 역시 빈칸의 감각을 잊기 어렵게 만들었다. 국산 야채의 한계니 이런 이야기로 몰아가고 싶지는 않은데, 우리의 경험에서 야채를 특별한 전처리 없이 불에 직접 굽는 경우는 흔하다고는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적절한 조리의 값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맛 그 자체보다는 하나의 접시를 나눈다, 그리고 욕심껏 속을 채워 싸먹는다는 경험에 핵심이 있는 요리라 느꼈다. 이는 현재 우리의 불판 앞의 쌈 요리에 대해서도 느끼는 감정인데, 누군가 고기를 '맛으로 먹는게 아니다'라고 하면 격렬한 반발에 부딪히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국의 요리를 통해 우리의 것을 돌아본다. 그쪽이나 이쪽이나 코와 혀만 두고보면 과연 최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