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칼리 - made from scratch
진부한 영문 표현중 from scratch라는 말이 있다. 밑바닥부터 쌓아올린다는 표현은 주방에 와서는 가공의 역할을 한 단계 더 도맡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타코를 만드는 곳에서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멕시칼리의 타코의 훌륭함은 이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는데, 굳이 다시 꺼낸 이유는 이곳이 이전을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멕시칼리는 한 층 더 완벽에 가까워진 완성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다른가. 길에서 기다리던 객들이 이제는 정해진 대기 공간에 모인다. 대기하는 곳에서는 자연히 벤치 등지에 앉게 되는데, 벤치의 높이가 낮아 식사중인 객들을 쳐다보지 않게된다. 대기 공간 운영에 있어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다. 새 주방, 새 스태프들과 함께하면서도 요리의 품질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서비스의 양은 늘렸다. 흰살생선 덴푸라를 끼운 타코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빛나며 께사디야는 그릴에 올린 느낌이 정석적이다. 파인애플 함량이 지나치게 넉넉한 피냐 콜라다의 정직한 풍미 또한 여전했다. 매장 입구에 늘어선 바카디 화이트 럼을 보면 항상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바에서도 싫어하는 주문이지만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마실 수 있을 일인가. 결과적으로, 모든게 나빠지지 않은 가운데 맞이하는 손님이 늘고 기다리는 시간이 짧고 쾌적해졌다.
토르티야를 반죽 이전의 가루와 물부터, 덴푸라를 필렛 가공부터, 살사를 고추 빻기부터. 이 모든 행위의 이유는 그만큼 변인의 통제를 잘 하기 위함이다. 그 진가는 환경이 변화할 때 드러난다. 다룰 줄 알기 때문에 흔들림이 덜하다.
멕시칼리에서 식사하는 경험을 생각할 때 현지와 비교해서는 어땠니 하는 기준을 들이미는 것은 적절치 않다. 토르티야 반죽을 위한 옥수수 하나도 마음에 드는게 없는 나라다. 현대 타코 담론이 그야말로 그 옥수수부터 시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곳이 추구하는 소노라-바하칼리포르니아식 타코는 그 게임에서 살짝 빗겨나가 있다. 굳이 이야기해보자면 밀 토르티야의 경우, 이상적으로는 반죽에는 라드를 넉넉히 넣고 굽기로는 끝부분의 말랑함이 사라지기 직전, 말려 올라갈까 말까 한 때의 아슬아슬함이 있어야 전체를 맛보며 변화를 느끼기 좋다고 생각하지만 촉촉함이 풍성한 멕시칼리의 토르티야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다. 토르티야의 품질에 대해 더 이상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 본다.
서울에서 타코를 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타코를 요리한다고 했을 때 이곳 이상으로 좋은 그림을 그려내기는 어렵다. 치밀하면서도 열정적이다.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픈 의지가, 사랑이 묻어나는 음식을 한 결과 5년만에 트럭 노점에서 이렇게 커다란 매장이 되었다.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쌓아올린 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