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Korea, W. W. Norton & Co., 2020
여러분은 한국 요리를 위한 요리책을 얼마나 자주 접하시는가? 생각건대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아마 살면서 단 한 번도 접하지 않을 존재 쯤이 아닐까. 그렇다면 아예 외국어로 된 한국 요리는 어떨까? 그것도 외국에서 성공을 거둔 한국 요리 따위도 아닌, 외국어로 다시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요리에 대한 책이라면 과연 이 책은 한국에서 팔릴 가능성이 있을까.
미쉐린 가이드의 국내 진출 전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 셰프같은 타이틀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김훈이 셰프가 저자라는 점이 이 책이 팔릴 가능성을 말해주지만, 고작 그러한 말로 일축하기에는 우리가 이 책을 두고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셰프의 유명세와 쿡북의 판매는 완전히 별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히노끼 카운터를 두고 말하지 않는 셰프와 맛보지 않고 알아채는 일종의 관심법이 마치 무협지 속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의 동경을 사는 문화의 덕인지 서울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내고 있는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의 옛 저서마저 번역이 되지 않고 있으며, 그의 가정식 레시피 책만이 <피에르 가니에르>라는 다소 황당한 제목으로 옮겨져 있다. 그마저도 롯데호텔의 주방 덕에 세상에서 빛을 보았을 뿐이다. 코앞의 레스토랑에 대해서도 무관심한데 뉴욕의 「단지」와 「한잔」의 요리책이라고 특별 대우를 받기는 어렵지 싶다.
그러나 우리는 책이 팔릴지 말지 고민해주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니, 책 이야기나 해보자. 이야기할 만한 거리가 있고 여러분이 이 책을 아마존을 통해 주문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어떤 책인가. 이 책은 김훈이 셰프의 눈으로 다시 본 한국 요리들을 수록하고 있다. 책을 관통하는 아이디어는 한국적인 맛의 정수를 찾기 위한 탐험이다. 된장 대신 일본의 미소를 쓰거나 김치에 생마늘을 쓰지 않는 등 한식을 미국에 접목하기 위해 손보려는 시도는 미국에 충분히 있으니 김훈이 셰프는 한국에서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한국 요리의 가능성을 찾아 한국으로 떠난다. 그렇지만 단순히 한식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발전에 대한 자신만의 공헌을 더하고자 한다. 이러한 책의 서문은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질문을 던진다-첫째, 한국 요리를 한국 요리로 만드는 것들은 무엇인가? 둘째, 한국에서 행해지는 요리에서 모자란 부분은 어디인가?
첫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책에서는 한국 요리를 한국 요리로 만드는 재료들을 엄선하여 나열한다. 미국인을 위한 책이므로 이러한 한식의 재료들을 구매할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하며, 만드는 법은 딱히 소개하지 않는다는 점이 밟힌다. 물론 현대 한국에서는 장류를 직접 담그는 곳 자체가 절멸에 다다르고 있기는 하다. 셰프가 나열하는 재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직 흐릿하게 정의되고 있을 뿐인 한식의 현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좋은 한국 술을 구할 수 없기에 사케를 수록하고 있으며(한국에서 구하기 쉬운지는 모르겠다), "시이타케"로 불리는 표고부터 미린 등의 존재가 한식을 전통의 영역에 묶어두려는 접근을 차단한다.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둘째 질문의 지점이다. 이 책의 모든 레시피는 근현대 대한민국, 김훈이 셰프의 할머니가 해주던 요리부터 한국의 곳곳에서 각별한 기억을 남겨주었던 식당의 요리들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독특한 이름의 창작 요리 따위의 자리는 크게 없다. 그는 한식의 계승자로서 레시피를 통해 한식의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어묵 볶음이나 콩나물 무침같은 반찬이 하나의 요리로 기록된다. 정녕 한식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계적으로 레시피를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맛을 강하게 하기 위해 소금 한 자밤을 더한다거나 하는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며, 계란찜에는 새우젓이 최고라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한다.(그리고 나는 이 의견에 매우 동의한다)
반찬에서는 기록자로서의 역할이 더욱 빛난다면, 셰프가 이 책에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쪽은 고기 단락부터다. 「Daniel」에서 프랑스 요리를 배운 경험을 접목한 갈비찜, 할라피뇨와 만난 육회 등은 한식의 발전 방향에 대한 셰프의 고민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한잔식 닭꼬치>는 당당하게 야키토리 그릴을 사용한다는 점이 언급되지만, 닭꼬치를 한국 요리로서 수록하고자 하는 시도가 그간 먹으며 별 생각을 하지 않았던 대학가의 닭꼬치에 대해 미안함을 가지게 한다. 햄버거 형태로 제공되는 「단지」식 제육볶음은 제육볶음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다. 한국의 여느 파인 다이닝이니 셰프를 내세우는 레스토랑에서도 충족되지 않은, 한식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빛난다. 뉴 노르딕의 유행을 타고 발효를 내세우는 곳은 있지만 이 책처럼 양념에 고기를 재우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는 레스토랑을 본 일이 없다. 궁중 요리와 고급 재료를 내세우는 곳은 많지만 삼각지의 「평양집」의 내장 굽는 내음과 죽도시장에서 맡는 신선한 비린내를 기록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어책이 그것을 해내고 있다.
생선 요리쯤에 와서는 거의 무릎 끓고 싶을 지경이다. 첫 두 생선 레시피는 한국식 회와 생선회와 초장이다. "오마카세"의 지옥같은 범람 속에서-나는 오늘도 누군가 나에게 유튜브의 오마카세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어야 했다- 한국 식문화의 축으로 자리잡은 이러한 요리에 대한 진치한 고찰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물론 나는 활어회 문화를 매우 싫어한다. 살아있다는 그 상태가 나머지 요소를 모조리 밟아 죽이는 현실이 비극으로 다가온다. 살아있기 위해서 숨만 붙은 생선을 유통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이, 단백질을 힘으로 분해하다보면 슬픈 물맛이 난다. 그럼에도 한국 요리에 존재한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서양의 도미나 신선한 알래스카 연어를 쓰는 뉴욕의 주방에서 답을 구할 수는 없지만 생각은 시작해볼 수 있다.
「단지」와 「한잔」의 팬이라면 이미 이러한 김훈이 셰프의 한식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놀랍지 않으리라. 책에도 다시 소개된 그만의 라면과 짜장면, 짬뽕 레시피는 그간 그가 미국에서 이루어낸 것들을 상징하고 있다. 이제는 책으로도 나왔다. 미국 전역에서, 김훈이 셰프가 가지고 있는 한국 요리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에게 앞서 한식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자리에 있을까? 단지 한식의 본고장인 한국에 있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는 거꾸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울게 더 많아 보인다.
이러한 책의 가치는 거의 마지막 단락, 칵테일과 디저트에 와서 피날레에 이른다. 현대 한국이 마주한 두주불사식 불행한 술문화와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된 허무한 디저트 문화 덕에 대부분의 레시피가 창작이다. 몇몇 재료나 요리가 존재하는 흐름 위에 있지만, 어차피 서울에서는 모두 무관심하지 않은가! 뉴욕에서 팥빙수를 두고 고민하는 셰프에게 우리는 부끄러워야 한다. 여름이면 모든 호텔이 애플망고 빙수로 호객을 하는 현실 속에서 셰프의 어깨만 무겁다. 찹쌀이나 미숫가루 아이스크림? 바닐라 아이스크림 하나도 먹기 힘든 지옥같은 도시에서 한식 재료를 아이스크림으로 승화하니 마니 다 꿈 같은 소리로만 느껴진다.
가정의 주방에서 이미 모든 레시피가 몸에 익어버린 한국인들에게 한국의 레시피를 다시 소개하는 이 책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버릴 게 없는 책이다. 책이 한국 음식들을 조명하는 방식, 또 그 조명 바깥에 존재하는 한국 요리, 그리고 한바퀴 쭉 돌아보고 난 다음 머리속에 남는 한식에 대한 감상까지. 한국 사람은 몰라도 한국인 요리사들은 읽어보아야 한다. 마침 한국에 발이 넓음 김훈이 셰프가 쓴 책이니 어차피 내가 말하지 않아도 똑똑한 요리사들이 다 읽어봤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