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 퀴진 50주년 4. 시스템의 모더니스트를 거부하다

누벨 퀴진 50주년 4. 시스템의 모더니스트를 거부하다

Les nouveaux cuisiniers NE SONT PAS SYSTEMATIQUEMENT MODERNISTES.

새로운 요리사는 시스템의 모더니스트가 아니다.

고 미요의 10계명 네 번째는 짧고도 간결하면서 유머러스하게 20세기 요리가 처한 위험을 진단한다. 이들이 말하는 시스템의 모더니스트(Systematiquement Modernistes)란 바로 냉동 식품을 말한다. 고와 미요는 특히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이 냉장고와 냉동고에서 쉽게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누벨 퀴진을 다루는 요리사가 더 이상 얼어붙은 가재 따위를 요리하지 않고, 냉장 기술을 섬세하게 다룰 것을 요구한다.

한국의 요리사에게 단순히 냉동 재료를 배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면 가혹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냉동이 아니면 단가가 지나치게 올라 일상의 식탁 위에 감히 올리기도 어려운 것들이 있는가 하면, 애초에 수입품으로 신선한 유통이 어려운 것도 있고, 냉동을 통해 식품안전을 확보하는 이익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진정한 새로운 요리사라고 하면, 생각건대 그러한 제한이 있는 재료를 배격하는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수입산 갑각류 같은 것이 가장 흔한 예가 될 것이다. 애초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대단히 좋은 물건을 수색해서 쏠 수도 없는 실정인데, 만 리를 건너와 다시 가게에서까지 냉장고 신세를 져 특장점이 반은 퇴색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냉장 유통하는 랑구스틴을 쓰거나 하는 노고를 가볍게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수입 식재료에 의존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는 도시국가가 아닌 바에야 원활한 물류를 더욱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재료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한 명의 요리사에게 기대할 것은 아니지만, 파이오니어가 있다면 기꺼이 따를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으리라 기대한다. 애쓰는 요리사들도 몇 있지만, 서울에 몇 개 되지 않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만으로는 판을 뒤집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별이 달려있지 않더라도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소비자가 도시에 많아져야만 할 것이다.


같이 보기

누벨 퀴진 50주년 리마인드
0. 전쟁 이후의 프랑스 요리
1. 재료의 선택과 조리
2. 식재료에 대한 시각
3. 가짓수를 줄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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