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고기, 미국의 새로운 와규?
바야흐로 십오년 쯤 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고령의 미국 소였다. 그것이 과연 안전한가 아닌가에 대해 한국 사회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안전에 대한 결론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여러분은 혹시 그런 기억이 있으셨는가? 30개월령 이상의 육우나 젖소, 그것도 미국의 소가 더 맛있을 수도 있다라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먼저 우리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소고기 분야에서 가장 앞선 담론은 미경산우에 대한 것이다. 문언상으로는 단순히 출산을(産) 경험하지(經) 않은(未) 암소를 의미하지만, 한우는 1살이 채 되기 전후로 발정을 시작하고 이후로는 출산하지 않더라도 발정 스트레스를 느끼므로 아예 난소를 적출하거나 결찰하는 경우도 많다. 농가의 선택에 따라 성기능을 유지한 채로 미경산을 유지하는 것을 미경산한우로 판매하기도 하지만 그 영역이 다양한 셈이다.
이러한 미경산우의 반대편 극단에 위치한 것이 젖소이다. 통상적으로 젖소는 착유를 위해 여러 번의 출산을 거치고, 우유 생산을 위한 상품 가치가 떨어질 때가 되에서야 도축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노령이며, 고지방의 우유를 계속하여 착유하기 때문에 지방이 모자라 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착유를 중단한 젖소를 비육하여 얻은 젖소고기의 가능성이 미국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통해 소개되었다.
유럽에서는 우유를 위해 키운 소로부터 고기를 얻는 것이 아주 희귀한 일은 아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생산되는 쇠고기의 절반 정도가 젖소였던 소로부터 얻은 것이라는 통계를 접한 적도 있을 정도이고, 이외의 국가, 예컨대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남쪽에서도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유럽에서 이러한 관행은 비교적 흔한 것이지 아주 일반적이지는 않다. 예컨대 스페인의 쇠고기로 일반적으로 가장 선호되는 Rubia Gallega같은 경우, 12개월 미만의 어린 송아지를 도축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 도축 전까지 8~14년을 키우기도 한다. 스페인어권,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미국 및 호주 등지에서 이런 고령의 소는 Vaca Vieja(Vacas Viejas)로 불리며 특유의 진한 고기맛과 두텁게 형성된 지방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미식의 영역에서 이러한 담론을 이끌고 있는 요리사는 스톤 반즈를 이끌고 있는 농부이자 요리사 댄 바버다. 댄 바버는 젖소 사육두수가 감소하고 있는 미국 낙농업계를 위한 대안으로 고기를 위한 젖소의 후비육을 제안하고 있으며, 직접 레스토랑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개최해 기존의 USDA 등급제에서는 낙제점을 받는 젖소고기의 저력을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미국을 비롯해 여전히 대다수의 서방 세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광우병이라 불리는 소해면상뇌증의 발생 위험으로 인해 고기를 얻기위한 도축은 30개월 미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히 수입하는 쇠고기에 대해서는 이 기준은 더욱 엄격하게 지켜진다. 곧 한국에 수입이 재개될 예정인 프랑스, 아일랜드산 쇠고기가 들어오더라도, 이와 같은 노령의 소에 대한 담론이 함께 들어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먼저 위기라고 하기도 전부터 위기를 벗어난 적이 없는 것 같은 우리 낙농업계를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이고, 백색 지방 위주로 좁은 담론만을 형성하고 있는 미식가들의 세계를 넘어서길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늙은 소의 고기들이 언제나 최고인 것은 아니다. 적절한 부위 선택과 드라이 에이징이라는 가공을 통해야만 진가가 드러나는, 까다로운 물건이라는 게 개인적 감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의 비육만으로 만들어낸, 와규가 이끈 쇠고기의 시대와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검토할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