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조 르브텀 - 2023년 여름
한국의 이탈리아 요리의 뿌리는 해방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은 동부를 중심으로 미국식 이탈리아 요리의 꽃을 피웠고, 미군 등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이탈리아 요리로 받아들였다. 통조림과 스파게티를 바탕으로 한 '스파게티' 파스타와 미국식으로 만들어진 피자가 이른바 정통의 자리를 점해 이탈리아 요리는 곧 단품 위주, 단순한 탄수화물 요리 위주의 문화로 이해되었다.
한국이 이탈리아와 견줄 정도의 무역 대국이 된 이후에도 이러한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피자 나폴레타나는 '화덕피자'로, 파스타는 '생면 파스타'로 옷을 갈아입고, 미국이 아닌 이탈리아 어딘가를 고향으로 내세웠지만 과연 그 피에는 지중해의 바닷물이 흐르는가. 오르조 르브텀의 요리는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방문 전에
오르조 르브텀의 예약은 캐치테이블을 통해 가능하며, 별도의 확인 절차는 거치지 않는다.
식사
오르조 르브텀의 메뉴는 썩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다.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전채의 구성으로, 브런치를 겨냥한 구성 이외에도 썩 흥미로운 방식의 전개를 예상케 한다. 대체 무엇이 그랬단 말인가.
첫번째로는 스프를 낸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가장 사랑받지 않는 형식의 서양 요리 중 하나이다(반대로 형식만으로 높이 사는 요리 또한 존재한다). 국물에 탄수화물을 입혀 먹는 문화에 강한 우리이지만 반대로 흐르는 액체에 가까운 형식 이외에는 사도로 취급하는 인식이 있어 스프는 한국에서 유독 발달하지 못한 형태에 속한다. 찌개에 들어가는 사리마저도 국물의 질감에 영향을 주지만 백탁액과 같은 시각적 기호, 그리고 크림 등에서 비롯되는 유제품 뉘앙스가 한국적인 맥락의 국물과는 어울릴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오르조 르브텀은 항상 스프를 내고 있는데, 용감한 선택이다. 다만 그 점만으로 높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날 준비된 스프는 조개 스프였는데, 내용물은 영락없는 클램 차우더였다. 이탈리아를 표방하는 식당에서 뉴잉글랜드 요리가 나온다고 해서 곧바로 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맥락에서 적절하게 구현할 수 있다면 이 요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감자 전분과 크림의 두터운 무게감이 모자란 가운데 의미를 모를 미르푸아는 스프로 스며들지 못한 채 씹히곤 했다. 빨간색 맨해튼식 클램 차우더에서는 미르푸아를 살려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뉴잉글랜드식에서 허용되는 채소는 감자 뿐이며, 아직 특유의 향을 전부 쏟아내지 않은 샐러리가 씹힐 때 나타나는 불협화음은 불유쾌하다. 과조리된 작은 생선살 조각과 조개는 긴 시간을 지나 숨이 멎은 상태였다.
또다른 흥미 요소로는 직접 만들어 별도로 판매한다는 이 브리오슈가 있었다. 한 덩이에 KRW 13,000이니 그 자부심과 도전 정신을 높이 산다. 어떤 맥락을 바탕으로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샴페인에 견줄 정도의 지방을 지닌 점은 높이 산다. 다만 곁들여지는 트러플 버터라는 물건은 정체 모를 느낌이었다. 거무죽죽한 반점이 썩 포함되어 있는 것 치고 트러플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 양송이와 올리브 따위에 색과 방향유를 입혀 파는 제품과 영혼을 공유하는 느낌으로 멀쩡한 브리오슈에 멀쩡한 버터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영혼을 잃은 듯한 요리의 끝에는 가장 영혼을 잃은 듯한 파스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타야린레 살시차 뉘앙스를 가진 라구를 소스로 택한 것으로 오르조 본가의 화이트 라구가 있다면 분점에서는 다른 방향을 택한 뉘앙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엄밀하게는 나뉘긴 하지만 북이탈리아의 영혼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지방이 많은 타야린은 강한 뉘앙스의 향신에도 내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다만 트러플과 버터로 간단하게 내는 것이 기본인 것은 이미 풍성하게 지니고 있는 지방의 뉘앙스만으로도 탐닉할 가치가 있는 게 타야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르조 르브텀의 타야린은 타야린의 이유를 상실하고 있었다. 업소용 대용량 향신료의 향은 강렬하지만 납작했고, 거기에 주장이 강한 치즈를 다시 얹은 격이니 타야린은 단지 잘 끊기는 면으로 전락한다. 살시차 인심이 좋다고 사람들은 좋아했을까? 북이탈리아로부터 다양한 요소를 빌려왔지만 인심 넉넉한 미국식 미트소스 스파게티보다 이 식사가 나을게 뭐란 말인가. 만테카레?
썩 흥미롭게 연출되는 티라미수는 희미하게 빛나는 빛이었다. 한국에서 별의 별 티라미수 변종을 만나보게 되는데 이정도면 그 존재를 납득해도 무방하다. 구운 다음 적신 반죽 특유의 무른 질감과 차가운 크림이 그럴싸하게 어울린다. 파우더가 쏟아지는 연출은 의도가 다분하지만 의외로 그 덕에 변화된 균형이 즐길 영역을 만들어낸다.
총평: 한계점에 있는 식당이라는 점수 평가의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식당이라고 부를 수 있다. 조리는 안정적이지만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으며, 아이디어는 고민한 느낌이 나지만 사람들이 모를 것 같은 지점에서는 영리한 꾀를 마다하지 않는다. 토니 부어댕이 잔반의 마술을 부렸던 레스토랑에서처럼, 요리사는 능숙한 솜씨를 뽐낸다.
경우에 따라 필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9점 이하의 점수로 내려갈 이유는 없으나, 유의미한 경험적 요소를 남기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이상도 어렵다. 조리 외적인 부분을 감안하지 않는 선에서 이 식당에 줄 수 있는 최선이다.
분위기: 좁은 간격의 폭이 빚어내는 북적임, 적은 채광과 어두운 내부가 저녁때에는 특유의 분위기를 뽐낸다.
서비스: 모자란 인력과 긴 동선. 최선을 다하더라도 열악한 환경.
가격: 스테이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주류 포함 인당 KRW 50,000 내외 예상. 이날 지불액은 인당 KRw 88,000(주류 포함).
음료: 구대륙의 놀랄 것 없는 선택지 가운데 이상하게 비싼 샴페인 리스트가 눈에 띈다. 불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