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 de Sucre - 이 시대의 바바
여기까지 찾아간 이유는 순전히 르 피가로지의 두 기사 때문이었다. 하나는 파리 최고의 바바 오 럼에 관한 기사였고, 또 하나는 이 취재에 관해 패스트리 셰프 크리스토퍼 펠더와 나눈 인터뷰 기사였다.
그렇다. 팽 드 수크레는 기사에서 시릴 리냑, 클라레 다몽, 크리스토페 미할락, 라뒤레 등을 모두 제치고 바바 오 럼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두 동업자(부부가 아니다)가 운영하는데, 두 사람은 피에르 가니에르 밑에서만 각각 6년을 있었으니 사실 유명해도 이상하지 않을 경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제과는 기술적 복잡성이 크지 않고, 대신 아이디어가 좀 더 드러나는 스타일로 이루어져 있다. 피에르 가니에르도 디저트에서만큼은 전위성을 강조하지 않는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그와는 또 다른 방향이다.
속까지 철저하게 적신 반죽에서는 확실한 증류주의 맛이 어울린다. 앰풀을 누르지 않더라도 잘 적신 느낌이지만 조금 더 누르면 럼 향이 반죽에 가득 퍼지는데, 마시는 럼(sipping rum)처럼 노트 자체가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 부분은 살짝의 시트러스향, 그리고 보이는 아래의 무슬린 크림이 채워준다.
만족감은 크림부터 먹게 되는 기존의 바바와 달리 반죽을 먹다 보면 그 다음에 크림을 먹는 재미, 그리고 그러한 구성에 따라 럼향 다음에 강하게 느껴지는 바닐라의 향이 주는 단맛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향신료와 같은 매콤함까지 느껴지게 하는 럼부터 제스트의 새콤한 향, 바닐라 크렘 무슬린의 달콤한 향으로 이어지는 가락이 작은 반죽 안에 주의를 놓지 못하게 만든다. 보통 크렘 무슬린보다 점도가 살짝 높아 한껏 젖어서 가벼워진 반죽과 같이 첫 모금에 씹고 나서야 향이 퍼지는 감각이 실감이 난다.
오늘날, 특히 피에르 에르메 시대 이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근대 시대 제과에서 맛(flavor)을 내는 것은 주로 증류주였다. 과일은 각종 리큐르로 표현되었고 브랜디는 요리에서도 흔히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바바 오 럼 정도가 흔적으로 남아 그 영혼을 계승하고 있는데, 많은 파티셰들은 럼으로부터 최대한 도망쳐 시대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고 있다. 나도 과거의 레시피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의 영혼까지 잃어서야 되겠는가. 팽 드 수크레의 바바는 그 영혼을 작게나마 간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