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pyland, Penguin, 2020
미국인들에게마저 미국 위스키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책이 있다면 단언 "Pappyland"이다. 어떤 주류산업의 중요 인물들도 아닌, ESPN의 저널리스트인 라이트 톰슨의 취재는 그동안 이 미국 소주가 도대체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의 성인들에게 있어 위스키는 연령대, 혹은 진입한 시간대에 따라 다른 술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20세기에 접한 사람들에게는 과일안주와 스카치 위스키, 샷잔에 털어넣는 독주의 인식이 있다면 서구에서 칵테일 르네상스가 부흥할 시절인 00년대~10년대 초까지는 늦깎이로 수입되어온 싱글 몰트 애호가들의 시대였다. 지금은?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테이스팅과 치열한 미각에 대한.. 과연 그런가? 유튜브의 시대라고 해야겠지. 유튜브의 추천에 따라 와인앤모어의 효자 상품이 결정난다. 이러한 흐름들은 시간대에 따라 유행처럼 생기고 또 변하지만 없는 것이 있으니 왜 미국 위스키이고, 미국 위스키는 어떤가 라는 지점에 있다. 도수가 높은 술이라면 소주도 40도로 나오는 시대이며 맛 타령을 하기에는 칵테일을 꺼리는 노인들의 행동거지를 지적해야만 한다. 결국 위스키를 마신다는 데 있어서 그 환상,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점을 밝힐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우리는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본저 "Pappyland"는 켄터키, 로렌스버그에서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위스키를 둘러싼 삶을 차분하게 돌아보며 진정 술 한 잔에 담긴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는 사학자들처럼 면밀하지도 않고, 과학자들처럼 정확하지도 않지만 단지 그들의 삶의 궤적을 함께 걷는 것만으로 켄터키의 내음으로 마음을 적시는 듯 울림이 있다.
미국 위스키의 역사에 대한 기초적 이해, 미국사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난점이 있지만, 본래 미국에서 판매되는 책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친절하다. 에세이에 가까운 만큼 때로는 직접 말하는 것보다 뉘앙스로만 전달하는게 더욱 자극적이지 않은가. 독자는 자연스레 세간의 위스키에 대한 생각들과, 글에서 드러나는 켄터키, 그 중에서도 반 윙클 패밀리의 삶의 풍미를 비교 시음하게 된다. 패피는 위스키의 부흥부터 위기, 재 전성기를 맞기까지 그 자리에 버텨셨다. 지금에야 위대한 위스키로 여러 거래처들이 앞다투어 그 이름을 쓰기 즐기지만, 진정 패피의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위스키는 없다. 1950~60년대 스미노프를 위시로한 보드카 붐이 일어나 위스키는 촌놈, 노인들의 술로 전락한 이후 패피에게는 끊임없이 주류업계와의 타협에 시달렸는데, 그 때 반 윙클 가족에 접근한 회사들은 나중에 하나가 되어 술을 어떻게 만들지가 아니라 어떻게 팔 지를 아는 전문가들이 된다. 그렇다. 디아지오. Norton-Simon, Schieffelin & Somerset은 모두 나중에 디아지오라는 이름하에 이합집산하게 되는데, 그들은 맛없는 위스키 시대를 연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위스키의 재전성기가 도래하자 입을 싹 닫았다. 소비자들은 라벨에 낚이기 마련이니까.
이야기 전체가 이러한 기업체와의 싸움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는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마주하게 되는 모습은 그 무엇도 아닌 켄터키의 따스한 공기, 세월 속에서 살아가는 장면들 뿐이다. 책에서는 패피의 위스키의 풍미의 특별함을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반 윙클 가족들, "패피"부터 프레스턴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로서 또 아들로서, 켄터키의 주민으로서 살아가는게 무엇인지를 자주 묘사한다. 왜 어떤 술은 더 특별히 사랑받는지가 모두 그 안에 있다. 수많은 위스키 상표들이 내세우는 전전antebellum의 환상들, "맨해튼" 칵테일로 대표되는 대도시의 미국이 아닌 진정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만나보라. 억만금을 쏟아부어 마시더라도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에 책 한 권으로 닿아나 볼 수 있다면 이만한 기회가 없다. 스카치도, 버번도 본래 시골뜨기들의 손에서 나온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지만 그 시골에, 독일계와 유태인들의 성을 물려쓰는 역사 속에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