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멜바, 엘 불리 최후의 요리
2011년, 스페인에서는 한 레스토랑의 폐업 기념 행사가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사인으로 가득 찬 셰프복을 입은 요리사들이 노래를 부르고, 어깨동무를 하고 기차놀이를 하며 마지막을 기뻐했다. 그리고 그 날의 마지막 정식 메뉴로 기록된 것은 (기념용 케이크 등을 빼고) 멜로코톤 멜바, 바로 에스코피에의 그 요리였다.
바그너의 오페라부터 오텔 리츠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품은 에스코피에의 페슈 멜바의 영혼이라면 역시 복숭아다. 그 복잡한 레시피를 펼쳐보이는 일은 오늘은 생략하자("멜바 콘", "바닐라와 라즈베리 모찌", "멜바 허브 티", "퐁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한 장의 사진, 그당시의 열기도 열정도 하다못해 아쉬움도 보이지 않는 이 평온한 백색 배경의 사진에서 여러분에게 꺼내드리고 싶은 것은 앞의 요리, 세 종류의 씨앗 형상이다. 셋 중 당연히 그 누구도 복숭아의 씨앗은 아니며, 하나만이 복숭아의 과육이고 나머지는 아몬드로 만든 것이다. 페슈 멜바의 공식을 돌이켜보자. 달콤한 복숭아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라즈베리 퓨레. 어떤 재료도 아몬드를 호명하지 않지만 엘 불리가 마지막으로 기록한 복숭아란 아몬드였다.
장미과의 핵과류에 속하는 열매들의 씨앗에 포함된 아미그달린은 효소에 의해 분해되며 벤젠알데하이드와 시안화수소로 나뉘어지는데, 이 벤젠알데하이드가 신선한 아몬드와 같은 향을 낸다. 다만 그 아몬드 향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볶은 아몬드의 향이 아닌 진득한 단맛, 특히 체리같은 느낌을 준다. 복숭아에서 체리를 떠올린다니 이상한 일이지만, 이 유독한(아미그달린은 그 자체로 독성이 있다) 매력은 오래도록 유럽인들을 사로잡아 아마레토와 같이 그 씨의 맛을 어떻게든 뽑아낸 리큐르가 널리 쓰일 정도다.
엘불리가 자랑하는 해체의 문법이 도대체 어디에 칼을 대었길래 그 씨만 남았는가? 후에 MIT의 M. P. Opazo가 기록한 문헌을 보면, 엘불리는 이 요리를 통해 과거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엘불리가 해온 것을 집약하며 미래를 열고자 했다고 한다. 엘불리의 작업이 전통과 관행으로 쌓여온 레시피와 문화에 대한 존경이자 도전이었다면, 마지막 요리에 와서 엘불리는 그 특유의 문법으로 재료 자체에 대한 물음까지 다시 던졌다고 생각한다. 무화과 잎의 초콜릿 향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요즘, 뒤의 복숭아 잎 차가 가져온 시대의 두근거림을, 열고자 했던 미래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한다.
따뜻한 계절이 오더라도 복숭아 씨를 씹지는 마시라, 하지만 그 꿈, 그 야망만큼은 곱씹어 보시기 바란다. 추첨으로 손님을 받았던 레스토랑, 스스로를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했던 레스토랑이 꿈꿔왔던 미래에서, 우리는 다시 어떤 미래를 10년 후에 선물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