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 2022년 겨울
방문 전
피에르 가니에르의 예약은 유선 전화, 네이버 예약 또는 이메일 등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공식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경우, 존재하는 좌석임에도 예약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예약 후 유선상 예약 확인 전화가 한 번, 방문 전일 문자 안내가 있으며 당일 별도의 확인 전화는 없다.
요리
「Esprit Pierre Gagnaire」메뉴가 이번 겨울에는 그랑 메뉴라는 이름으로 교체되었다.
가니에르의 한 무리의 군집과도 갍은 한입거리의 공세에 대해서는 이미 그 이유를 담은 책을 소개한 바 있으므로 더 이상 코멘터리는 하지 않겠다. 다만 의문스러운 지점은 종래 키르 로얄과 같은 칵테일의 맛과 낮은 온도로 여운을 끊어내는 구성이 아닌 해초류의 짠맛과 감칠맛을 배열하여 다음 식사까지 여운을 연장했다는데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다시를 젤라틴으로 굳힌 베린과 다시마가 주는 여운은 상당히 긴 편인데, 샴페인과 짝을 짓는 상황임에도 부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운이 이어지기 위해서 서비스의 간격이 반드시 조절될 필요가 있었다.
다음 요리의 구성을 보면 앞선 흐름이 이해가 가는 점이 있기에 아쉬움이 묻어나지만, 어쨌거나 식사는 계속된다. 기본적으로 놀라움이 크지 않은 전채들로 주로 그 완성도가 관심사가 되는데, 갑각류 살을 갈아 만든 수플레는 그 친절한 촉감이 훌륭하지만 최상단의 살조각은 불안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잉여로 머무를 뿐이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옥의 티'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필요해 보인다. 수플레-플랑으로 이어지는 조직의 끝에는 거칠게 다진 테린으로 마무리했는데, 적색육 부분의 맛이 재료의 한계를 느낄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상투적인 파테 앙 크루트를 섣불리 해체한 데서 의문을 느꼈다. 조리가 지나치게 건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크루트가 맛의 경험에 있어서 유의미한 구성임에도 엄밀한 의미에서 빵이 아닌 팽 당텔은 그 역할의 어떠한 장점도 대체하고 있지 못했다. 카시스를 비롯, 모든 접시가 전형적인 짝짓기의 구성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가운데 오직 그 배열과 조리 방식의 변형에 몰두한 구성인데 그러한 이유가 전면에 드러나지 못했다.
외려 그러한 조리기법이 아닌 향(flavor)에 집중할 때 조리는 빛났다. 역시 뻔한 트러플과 관자의 짝짓기이지만 아주 살짝의 과실향이 전체의 균형을 높은 차원으로 올려낸다. 알레망(독일식) 소스를 바탕으로 하는 소스의 습관적인 베르무트로부터 배추의 단맛까지 프렌치 베르무트의 향이 한 입거리의 시간을 고르게 관통한다. 전통적인 조미가 요구하는 맛의 규격을 거부하는 피에르 가니에르 방식의 전형적인 성공례로 칭할 수 있다.
이 요리 역시 유사한 접근대로, 바다의 맛을 겹겹이 쌓는다는 일관된 방향성을 보여주나 조리의 섬세함의 모자람으로 크게 무너졌다. 단백질의 조리에 있어 부위별 차이에 대한 고려가 모자라 가뜩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주인공인 감자 매쉬의 질감과 불협화음을 빚는다. 갯가재(écrevisse)를 상정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유사한 갑각류를 연속으로 배치하는 감각 역시 지루했다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에스프리 피에르 가니에르 메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 요리에 대해 가장 큰 기대, 그리고 우려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본래 이 접시의 원형은 토끼를 조리하는 요리, Lièvre à la royale로 고전 프랑스 요리의 죄악과도 같은 미덕, 미식의 정수를 품고 있는 요리라 할 수 있다. 형체를 모두 잃을 정도로 끓여 더 이상이 없을 정도로 녹아버린 액체의 촉감은 본래 이 없는 왕을 위한 것이나 쾌락의 입장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푸아 그라와 풀바디 레드와인을 바탕으로 중심 단백질, 페리고 소스까지 전체가 쾌락으로 질주하는 이 고전 요리는 누벨 퀴진 이전 프랑스 미식이 추구하는 가치 전체를 집약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조리법은 크게 바빈스키와 카렘이 전하는 카렘식과 쿠토 상원의원이 정립한 쿠토식으로 나뉘는데, 폴 보퀴즈를 필두로한 20세기의 셰프들에게 주로 주목받은 방식은 쿠토식이다.
그러나 토끼나 멧돼지를 구할 수 없는 현실, 그리고 가격정책 미변동의 현실이 이 요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토의 레시피 원전은 우선 페리고 트러플과 부르고뉴 피노 누아, 정확히는 샹배르탱의 레드를 필요로 하므로 팔자가 나쁜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주방은 토끼에 집착하지 않고 단지 라구의 일종인 시베의 이름으로 후퇴했다.
접시를 받아듬과 동시에 뿜어드는 죄악과 쾌락의 향기가 나를 썩 만족시켰으나 접시에 빠져들수록 깊어지지 않음에 슬펐다. 분명 기술적 조치사항들은 나름 합리적이다. 팬에 그을린 돼지고기는 냄비요리가 가지지 못한 전형적인 crunchness를 더하고 푸아 그라의 모자람은 유지방 넉넉히 채운 크림으로 덧댄다. 하지만 쾌락의 정수에는 닿지 못하고 있었다. 고전적인 아 라 로얄 방식의 결과물로 냄비에 들어간 단백질은 건조해진다는 문제점 역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토끼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가니에르 본인의 이름에 걸맞는 조리의 디테일이 살아있지 않아 실망했다. 차선책의 총체, 무대 바깥, 극장 바깥의 찬바람을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맛을 쌓아가는 과정에 있어 특정한 규칙에 기대지 않을때 오히려 요리를 더욱 빛난다. 브란지노는 팬 프라이의 상태가 위태로웠으나 소렐을 중심으로 한 신맛의 감각에 집중한 구성은 탁월했다. 소스부터 소렐까지 이어지는 신맛의 감각으로부터 삶은 야채와 양송이 뒥셀이 단맛으로 적셔지는 경험은 가니에르 방식의, 맛이 겹겹이 쌓이는 쾌락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 올바르게 쪄낸 듯한 돼지감자의 단맛은 그 자체로도 절경이지만 차조기와 트러플로 쌓여가는 경험은 향연이라는 표현을 연상케했다. 비록 그 풍경이 초기 레스토랑이 표방했던 한국의 식문화를 잊었다는 점은 아쉬우나, 어설픈 신토불이 정신보다는 확실한 쾌락이 정답이라고 하겠다.
특히 잔여물을 우린 듯한 이 푸딩이 핵심이었는데, 지방 위의 떫은맛에 더해 큐민과 타임 등 향신료의 힌트가 감각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맛이 켜켜이 쌓이는 와중에도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경험은 쾌락으로 가는 열린 문과도 같다.
긴 식사로 인해 감각이 한껏 무뎌지고 만 관계로 디저트에 대해서는 상세히 논하기 어려운 점을 양해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인상을 정리하자면, 가니에르의 카탈로그에서 나온 피망이나 비스퀴 수플레(단품 추가 주문)는 납득할 만한 즐거움을 지니고 있는데 비해 나머지 것들은 프랑스 제과가 제공하는 전형적인 단맛의 역할에 빗대어 빈 칸이 느껴졌다. 피망의 단맛과 딸기를 연결하는 구상은 결국 생과를 거부할 수 없는 도시의 압력에 대한 호쾌한 일격이었다. 이외의 국산 과일에 대한 답변은 대체로 시큰둥했다. 여러 프랑스 제과사들이 황금빛의 국산 배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지만 그 해답으로 만족스럽기가 대단히 어려우며 이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의 열매들은 이미 전형적인 가공방법이 다 자리잡아 그것이 익숙한데, 어쨰서 우리 과일에는 그런 시도가 허용되지 않는가? 그런 지혜야말로 서양 주방에서 먼저 제시해야 하는 경우라 생각한다. 캐러멜이나 초콜릿을 올린 타르트가 그 자체로 완성형의 레시피인데, 배의 씹히는 감각과 더해지는 과실즙의 뉘앙스는 긍정적 인상을 덧씌우지 못했다. 제주의 시트러스들을 사용했다는 중심부의 작품 역시 과연 수많은 만다린 중 어째서 어떤 것을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려운 가운데 신맛이 미약해 전체가 흐릿했다. 모종의 이유로 거대화된 제주의 과실들의 맛은 과연 올바른가? 가니에르 본인에게 이 맛이 닿은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 와중에 가니에르의 오래된 레시피인 비스퀴 수플레만이 가장 확실한 만족을 안겨주었다. 올바르게 구워진 겉면과 흐느적거림에 가까운 나머지,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모순의 질서, 전체를 아우르는 구운 피스타치오의 견과향. 곁들임으로는 신맛을 쌓아냈는데 코스에서 데세르를 구성하는 이유가 그 안에 있었다.
총평: 풀 메뉴를 "완주"하고 나서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사이 레드 가이드의 상륙, COVID-19의 유행 등 다양한 외부 환경의 변화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여전히 정격이라는 표현에 걸맞는 프랑스식 정찬을 내는 몇 안되는 공간이자, 서울에서 가장 선도적인 위치에 존재해야만 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풀 메뉴는 실행에 있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꿩 테린과 카시스의 변주는 완성도가 낮으며, 시베는 열악한 환경에 대하여 노력한 모습은 보이나 그 본질을 관통하고 있지 못하다. 코스에 겹겹이 쌓이는 트러플은 도시의 지저분한 욕망의 눈치를 보는 가운데 소고기에 이르러서는 잉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에 달했다.
파격을 주제로 하는 접시에서는 피에르 가니에르라는 인간의 과거가 흐릿하게나마 보이지만 전형적인 프랑스 요리를 무대로 할 때마다 그 요리의 본래의 아름다움이 떠올라 몰입은 흐뜨러지고 만다. 파격 이전에 부술 격이 단단하게 서있지 못한 상태이다. 근래의 화두와 무관하게 완전한 몰입, 뒤 없는 쾌락을 선사하고자 하는 공간의 취지에 부합하는 결과물로 가득차야 할 풀 메뉴일수록 경험은 고양되기보다는 위태로워진다. 서울의 열악한 환경 이외에도 무언가가 이 주방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 혹은 이것이 오늘날 이 주방이 보여줄 수 있는 전부인가?
서비스:
가격: 점심 메뉴 10만원부터, 만찬 코스는 KRW 200000~340000.
음료: 식전주로는 샴페인, 소고기에는 피노 누아, 해산물에는 샤블리. 어떤 도멘을 선택하느냐는 비즈니스의 문제와 주로 엮이는 것으로 보인다.
- +82-2-317-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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