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라 - 피스타치오 젤라또
젤라떼리아 피에트라의 존재에 대해서는 오픈 전후인 2020년~21년 초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김기태 씨의 소개도 있었거니와 온갖 잡지에 실렸기 때문이다. 몇 년째 질리지도 않고 펠앤콜을 싣는 모 월간지부터 엠젤로까지 거침없이 소개하며 건강한 젤라또라는 글을 쓰는 모 신문사까지 믿을 글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므로(기본적으로 이 저자들은 일 년에 한 번만 아이스크림 전문가가 되는 사람들이다) 잡지를 따라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가게의 존속에는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본지에 피에트라를 게재하지 않은 것은 가게에서 진행한 블로그 마케팅이 큰 이유가 되었다. 이 때문에 개인 가게에 대단한 사적인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거니와 사실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잘 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새로운 가게는 개인에게는 생존의 공간이지만 소비자에게도 선택권이 되어준다. 따라서 나는 심지어 내게 나쁜 인상이 남은 가게여도 잘 되기를 바란다. 음식은 결국 먹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물건이고 소비자가 먹어보고 판단한 뒤 내리는 결정의 총합이 사회의 여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의견과 달리 소비자들이 가게의 편을 들어준다면 내가 소비자들을 원망하면 할 일이지 가게 주인에 원한을 품을 이유는 별로 없다. 하지만 블로그 유료광고(그것도 검색을 피하는 형태)는 소비자가 접하는 정보를 왜곡하기 때문에 그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매장은 지면에서 다루고 싶지 않다.
비교적 자주 가는 매장이「더 마틴」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지만 그 다음은 「젠제로」였다. 젠제로 맛이 이거 영 아니라는 글을 몇 차례 게재하여(비단 이유가 그뿐만은 아니겠으나) "나는 맛있는데, 니가 뭔데 맛없다고 하냐" 류의 익명 투서들도 여러번 받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먹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상황이 따라주는 때에는 나도 계속 이용해왔다. 비평적인 문제가 종교와 같은 신념이나 선악의 문제는 아닐 뿐더러 음식이라는 게 살다 보면 기본적으로 선택의 원인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여러분은 점심 메뉴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맛에 대한 평가가 해당 매장의 생사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피에트라를 필두로 한 김기태 씨 컨설팅을 받은 가게들 역시 단지 블로그 바이럴 마케팅 때문에 더 이상 지면에 싣지 않을 뿐 사적인 생활에서 배제할 이유는 없으며 내가 무언가 나쁜 감정을 품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다만 바이럴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채택하기 전인 2020년에는 네이버에 저런 글을 쓰고 해당 매장의 오너 계정으로부터 날선 반응을 직접 받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갑자기 김기태 씨로부터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다는 댓글을 받기도 했다. 게시글이 게시된 지 꽤 시간이 지난 후였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없는 시간을 쪼개 답변을 작성한 바 있다. 물론 이런 이유로 김기태류 가게에 가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애초에 터키를 언급했는데 나는 공릉동의 터키인이 하는 젤라또(!) 가게도 두어 번 간 적이 있는데 그곳도 그 스승의 자취가 진하게 묻어있었다. 아현 정비구역 쪽의 에스따떼와는 컵 숟가락부터 앉는 의자까지 같았으니. 그의 플래그십이라고 할 수 있었던 도도와 코타티는 개업 초부터 쫓아다녔었고 하다못해 누볼라까지 갔으니 외려 이런 김기태류 가게를 자비로 가장 많이 방문한 축에 든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럼 앞으로도 잘 다니거나 조용히 살거나 하면 될텐데 갑작스레 지침을 변경하여 피에트라를 리뷰하는 이유는 피에트라의 아이스크림을 먹고 무언가 할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비단 피에트라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피에트라를 비롯해 최근 몇 곳의 젤라또 가게를 들렀고 합쳐서 하나의 심상이 떠올랐으나 이에 대해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피에트라였다.
일단 이 가게 자체의 설정이다. 재료를 강조하다 못해 튀어나왔다. 물론 안좋은 재료를 쓰는 곳들이 주방을 가리고 싶어하는 만큼 좋은 재료를 쓴다니 내놓고도 싶겠지만 다소 황당하다. 정식 수입제품 기준 40g에 KRW 30000을 가뿐히 상회하는 말차라던가 직접 콘칭한다는 초콜릿 등의 설정이 이어지는데 가능한가는 둘째치고 가능하다 보더라도 의미있는가 의문이다. 녹차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말차는 Ts단위로 계량하여 넣는 재료인 만큼 의외로 감당이 될 수도 있고 초콜릿 가공이야 배우면 할 수는 있다. 애초에 직접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도 전형적인 환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재료가 앞서는 만큼 정작 현장에 서있는 사람, 기술자의 자리는 뒤로 밀려난다. 무스나 패스트리 크림 등의 질감이나 맛(flavor)의 밀도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서울 사람들이 유독 아이스크림을 두고는 이른바 쫀득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질감을 굉장히 따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과연 한국의 아이스크림 시장은 기술에 대해 통달한 소비자들과 좋은 재료를 찾아다니는 장인 생산자들의 만남의 장소일까? 내 생각에는 아니다.
피에트라의 피스타치오를 두고 생각해보자. 스스로 아예 검역을 거쳐 수입까지 한다고 하는 브론테 DOP 피스타치오를 사용한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스크림 위에 다시 잔뜩 뿌려주기까지 하는데 엄밀하게는 아이스크림 위에 뿌린 이런 토핑은 잉여에 불과하다. 애초에 더 편한 방식, 더 맛있는 방식으로 먹기 위해 극단적으로 가공한 아이스크림인데 그 위에서 원재료가 부활한다니 이는 시각의 망령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아래의 크럼블처럼 없는 맛을 덧대기에는 같은 재료이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며, 질감에 변주를 주기에는 씹힌다고 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가루같은dusty 감각이 무의미하게만 다가온다. 그러나 맛에 굉장한 영향을 미침은 부정할 수 없는데, 바로 심리적인 자극, 시각의 조미료 역할이다. 본격적으로 쑤어 타버리지 않은 시칠리아 피스타치오의 알싸한 힌트가 조금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어쨌거나 피스타치오라는 시각적 기호 전달에 더욱 충실하다. 아이스크림을 다루기 위해 가루들을 걷어버리고 아래로 향하면 그 내심의 사정은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낳는다.
달라붙는 성질을 이용해 컵 아래까지 채우지 않고도 꽉 찬 듯 담아내는 기예는 참으로 현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본다면 가장 먼저 문제되는 지점은 얼음장같은 온도다. 세상에 할 말이 없어서 아이스크림이 차갑다고 불평이냐 하겠지만 아이스크림이 맛있는 왕도의 온도 범위를 이탈한다. 영하 11~12도에 설정된 이런 음식의 통상적인 제공 온도보다 유의미하게 낮다. 빨리 녹는 편은 아니기에 입안에 잠시 머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차다 보니 반사적으로 삼키게 되고 삼킨 다음에는 속의 냉기가 잘못을 깨닫게 만든다. 수다 떨면서 언제 녹는 줄도 모르고 먹는 경우에는 조금 나을 수 있다고 하겠지만, 이런 반 액체류의 음식은 애시당초 제공하는 그 순간에 최고의 컨디션이어야 하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가공 과정을 통해 질감부터 맛의 구성까지 순간적인 균형을 완성하고 그 덧없음ephemerality에서 자극을 받는 것이 요리의 왕도인데 방치를 요하는 설정이 앞설 수 없다. 단순하게 여러분이 좋아하는 스시, 요리사가 쥐어 낸 다음 몇 분 기다려야만 한다고 하면 납득하겠는가?
브론테 DOP 피스타치오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항상 내 감각의 문제를 상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진 이외에도 추가적으로 시간을 들여 피스타치오를 다시 충분히 맛보았다. 예전에는 독한 커피를 마셔보는 것으로 후각을 다시 점검해보곤 했지만 쉽게 복제 가능한 요리는 다시 먹어보는 것으로 영점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결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온도는 여전히 얼음장인 가운데 왜 브론테 DOP인지가 잡히지 않았다. 내가 피스타치오 맛을 몰라서 느끼지 못했다는 말만은 말아달라. 굳이 언급하자면 올 여름 르 베르나르댕에서는 시칠리아 피스타치오로 점철된 디저트를 먹었고 날것도 충분히 씹을만큼 씹어봤다. 이런 걸로 여러분을 설득하는 것을 정말로 싫어하지만 하여간 없어서 직접 수입하는 매장의 열정만큼이나 이쪽도 가벼운 마음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하여간 시칠리아 피스타치오가 아니더라도 좋은 피스타치오는 다른 넛 종류들과 비교되는 복잡함-불쾌하지 않은 astringency나 green/fresh cut grass의 향에 특유의 고소함이 막대한 집적도를 보이는 결과 크림 파스타나 아이스크림과 같이 막강한 지방 함량을 자랑하는 요리를 두고도 전체를 해치울 수 있는 맛으로 기능한다. 허나 일단 온도가 낮은 탓에 섬세한 캐릭터를 감지하기 어려운 점은 별론으로 치더라도 이 크림에서는 그러한 맛의 집적도가 와닿지 않는다. 텍스쳐 자체가 까끌거린다거나 하는 등 완전히 잘못 만든 것에는 속하지 않고, 분태가 주는 첫인상과 적당한 피스타치오 향에 기대면 썩 나쁘지 않게 먹을 수 있지만 가격을 고려했을 때 페이스트를 사용하는 비교적 저가의 제품군이나 심지어 미국산 피스타치오를 볶는 경우와 가격 만큼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한다. 고소한 맛이 강한 유제품이 지방맛의 일익을 담당하고 피스타치오가 향신료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그림이 이상적이겠으나 특유의 복잡함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차라리 저가의 피스타치오를 단순히 강하게 볶아댄 것들이 특유의 고소함으로라도 어필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또한 상당히 녹지 않는 편인데 최근 진행하고 있는 젤라또로 그림 그리기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이를 절실히 느꼈다. 팔레트에 수십 번은 치댄 뒤에야 연필에 조금씩 묻어나오기 시작했으니 하물며 입안에서 그대로 녹으며 맛이 풀어질리 만무했던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말로 더 차갑게 내기 때문에 더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젤라또를 제조할 때에는 영하 11~12도에서 PAC를 260~300정도로, 여기에서 섭씨 1도를 더 내릴 때마다 PAC값을 20정도 내리도록 지시하고 있으므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더 많은 고형분이고 결국 더 많은 비용이라는 계산이다. 일견 합리적이지만 이는 빙점을 낮추기 위해 사용하는 재료 등이 동일하다고 할 때만 유효한 생각이다. PAC라는 것은 결국 총 중량에 대해서 물이 아닌 기타 성분들이 물의 빙결을 어느정도 방해하는가 하는 것을 수치화한 것으로, 단순하게 백설탕을 부어넣는 것으로도 빙점은 내려간다. 물론 이렇게 하면 PAC가 내려가는 만큼 고형분과 당도가 늘어나므로 엉터리 솔루션일 공산이 크고,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자량이 작은 당분으로 대체하거나 단맛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빙점을 낮추는 추가적인 고형분을 처방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등 간단한 산수가 들어가게 된다. 하여간 이러한 방식이 단순한 더하기로만 이어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빙점을 무엇으로 내리느냐, 그리고 어쨌거나 내려서 어느 정도(물이 75~80% 냉각)는 맞추더라도 차가워진 덕에 무뎌진 감각에 대한 보상이 무엇으로 들어가느냐 했을 때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 따라서 가격이 높으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왜냐 하면 이러한 기술적 성능과 해당 첨가물의 가격이 정비례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예시로 가장 비싼 재료일 피스타치오를 계속 줄이면서도 빙점은 계속 내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피에트라는 KRW 8000~9000의 가격대를 설정하면서 개인 가게로는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가격 안에서 발견한 만드는 이의 모습은 가격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호호 불어 먹어도 식힐 재간이 없이 끓어오른 탕국물이나 철판에서 뛰쳐나온 호떡의 소처럼, 피에트라는 극단적인 한국 음식의 온도 감각을 영하의 영역에서 답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느 가게에서도 쉽게 보지 못한 모습이므로 분명히 새롭다. 이외의 점들에 있어서 저가의 김기태류 매장들과는 사뭇 다른 메뉴들이 주는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KRW 8000~9000의 가격에서 만드는 이가 드러나는 즐거움의 지점은 상술한 바와 같으므로 과연 매력적인 선택지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료가 없어서 수입한다의 선택지는 명동의 에쎄레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는데 국내에 좋은 바닐라와 초콜릿 커버춰를 선보인 공헌은 지대하다 하겠으나 에쎄레 그 자체가 특별히 무언가를 선보이지 못한 결과로 에쎄레가 도입한 재료들 역시 국내에서는 여전히 미약한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다(그러니 사실 지대하다고 하면 잘못된 말이다). 이외에도 신기하거나 희귀한 재료를 내세우는 컨셉은 요식업계 전반에서 꾸준히 등장해왔고 꾸준히 사라져왔다. 피에트라는 분명 영리하고 철저하게 준비했지만, 재료 바깥의 바탕이 되는 기술에 의문이 있는 만큼 소비자 쪽을 의심하게 된다. 이미 몇 겹으로 씌운 정보의 조미료 뒤의 맛을 느끼고 있는가? 물론 다들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존속을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 할 말이 떠오른게 이거냐고 하는데 사실 이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이 1인 운영 시스템이다. 홀을 아예 비워뒀다가 종 따위의 물건으로 객이 입장하면 그 때에만 접객하는 시스템인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지연 문제를 비롯해 여러가지로 소비자 경험에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 카페의 경우 사람이 좋거나 공간이 좋아서 가는 곳도 굉장히 많은 실정인데 아이스크림 가게들은 공간은 반쯤 포기한게 보통이기에 사람의 빈 칸이 더욱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2019년 경 끼아로 젤라떼리아에서 선보였던 브론테 DOP 피스타치오. 핸드캐리로 수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식품위생법 위반이고 수입신고 및 검사를 거치면 배보다 배꼽이 되기에 이런 프로젝트는 단발성에 그치게 되는 경우가 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