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의 근현대사 ② : 피자의 세계화와 반세계화

I. 피자의 세계화, 정확히는 미국화

피자는 19세기 말에 이미 나폴리의 대중음식으로 자리잡았으나 피자가 서구권에서 보편적인 음식이 된 계기는 나폴리 그 자체가 아닌 미국에서의 인기라 보아야 한다. 물론, 나폴리는 항구도시로 번성하던 때부터 쇠퇴한 지금까지 영국인들과 독일인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관광지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나폴리의 식문화를 가져가지 않았다. 애초에 나폴리 피자는 지역성이 강한 재료에 크게 의존하기도 하거니와, 고급 음식이나 이국적인 요리로 주목받는 물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자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해 접경지로 퍼져나간 것도 아니다. 포카치아를 먹는 이탈리아의 중부에도 피자가 퍼졌고, 밀라노와 같은 대도시로 유입된 인구로 인해 피자가 북부에도 퍼지기는 했지만 피자는 여전히 나폴리 출신들이 즐기는 나폴리 음식이었다. 가난을 피해 떠난 나폴리 이민자들의 피제리아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전 글에서도 다루었듯이 미국에는 이미 1900년대 초부터 토마토 파이라는 이름으로 피자를 파는 가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가게들은 거의 전부가 이탈리아인들의 거주구에서만 영업했으며 즐기는 사람들 역시 이탈리아계가 대부분이었다. 피자가 미국 전역, 그리고 미국인들이 드나드는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을 때 이러한 나폴리의 전통은 그다지 역할을 한 것이 없다. 피자는 온전한 미국 음식으로 자리잡아, 미국 음식으로서 세계에 보급되었다고 평가해야 한다.

II. 1960년대 미국 피자의 탄생

미국 피자를 미국 피자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페페로니와 같은 미국적인 토핑부터 클램 파이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피자들도 다루겠지만 미국 피자를 미국 피자로 만든 것은 맛보다도 그 형식이다. 이 시기 피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화가 등장하는데, 피자가 배달 음식이 된 것이다.

피자가 초기부터 산지에서 바로 먹는 신선한 음식은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나폴리에는 식사때를 맞추어 잔뜩 구워둔 피자를 쌓아두고 파는 가게들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중세 도시의 구조상 피자를 거리에서 가까운 곳에서 구울 수는 없었으므로 나폴리의 피자는 태초부터 굽는 자와 파는 자가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피자가 구워진 뒤 유통을 거친다고 하여 이 시기의 피자를 우리가 알고 있는 배달 피자와 동일시해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폴리 피자와 구분되는 미국 피자, 즉 배달 피자는 무엇인가? 그 특징으로는 피자의 유통수단으로서 배달, 그리고 가스 오븐의 사용과 이 두가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체인점화라는 세 가지의 특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배달 수단이다. 종래 나폴리의 피자 역시 유통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전통적으로 피자를 옮기는 수단은 이륜차나 사륜차가 아닌 사람과 수레 등이었다. 피자가 담기는 용기 역시 골판지 상자가 아닌 커다란 구리제 철가방 비스무리한 물건stufe이었다.

나폴리 거리에서 피자를 파는 행상. 1960년. Gettyimages.

땅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거리에서 피자를 팔 필요가 없었다. 피제리아들은 탁자와 의자를 두고 홀 서비스를 제공했고 식으면 맛이 없는 피자라는 음식의 특성상 주로 그 공간에서 소비되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부흥과 함께 패스트푸드 산업이 출현하면서 피자는 대전환을 맞는다. 1940~50년대부터 시간제로 일하는 노동자들을 노려 빠른 서비스를 강조하는 식당들이 등장하며 징조가 등장한 가운데 미국 경제의 부흥기를 맞아 이러한 식당들이 빠르게 확장하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맥도날드, KFC와 같은 체인형 레스토랑들이 이 시기에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피자 역시 이러한 경향에 탑승했다. 그러나 피자는 햄버거와 치킨 등이 할 수 없는 일을 했는데 바로 배달이었다. 전해내려오는 일화로는 도미닉의 피자가게를 인수한 사업가가 폭스바겐 비틀을 이용해 피자를 배달해준 것이 시초로 알려져있는데, 그 진위는 불분명하더라도 1960년대 초부터 피자가 배달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1963년 피자의 포장을 목적으로 한 골판지 상자 특허가 출원되기도 했으며, 도미노와 같은 곳들은 특허와 무관하게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골판지 상자를 쓰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상자 포장과 함께 자연스레 내열 소재로 덮인 피자 가방 역시 뒤이어 출현했으며 이를 통해 피자는 배달 음식의 시초이자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다.

1960년대 피자 굽기용으로 만들어진 가스 오븐이 보급되면서 피자의 공급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 피자는 햄버거와 함꼐 미국의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는다. 이와 함께 냉동 피자의 등장 역시 피자의 보급을 도왔다. 이와 같은 기술의 도움으로 흔히 뉴욕 스타일로 불리는 피자는 미 전역에 보급되었으며, 모차렐라 치즈로 전체를 덮고 페페로니를 얹는 식으로 피자는 완전히 미국화된다.

III. 反미국적 피자, 나폴리 피자의 부활

미국 피자가 미국에서 너무나 큰 성공을 거둔 나머지 거대 외식 기업들이 정형화한 배달 피자는 세계 피자의 새 표준이 되었다. 1977년 리틀 시저社가 피자를 위한 컨베이어 벨트 오븐을 도입하고 1979년에는 한 판 가격에 두 판을 주는 정책으로 업계를 휩쓸며 컨베이어 형식 오븐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Middleby Marshall社는 도미노와 파파 존스와 같은 대형 피자 체인에 컨베이어 벨트식 오븐을 대량으로 납품하며 피자의 세계적인 보급에 앞장섰고 우리가 이해하는 피자가 세계에 퍼졌다. 유럽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벽돌 화덕은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이 전기 오븐, 가스 오븐으로 대체된 가운데 피자 오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 상황을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옛 방식대로 나폴리 전역을 먹여살리고 있었던 피자이올로였다. 1981년 APES(Associazione Pizzaioli e Similari), 1984년 AVPN(Associazione Verace Pizza Napoletana) 등 피자의 사회적 위상 재고와 피자이올로의 권익향상을 위한 단체들이 조직된다. 1989년 피자 마르게리타의 100주년(앞서 살펴보았듯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행사를 크게 치르며 이들 단체들은 당시 B급 음식di Serie B으로 치부받던 피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할 필요를 느꼈고 나폴리 정계, 학계 인사들이 이에 응하여 나폴리의 민관이 협력해 나폴리 피자의 표준을 개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왜 피자는 화덕 오븐을 써야하는지 등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최초로 이루어졌으며, 이외에도 피자 반죽의 수분율이나 밀가루의 단백질 함량 등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가 발전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나폴리 피자업계가 처음으로 이룬 업적은 이탈리아 공업규격에 피자의 규격을 등록한 것이다(UNI 10791:98). 2004년에는 대외적 구속력을 가진 EU인증(S.T.G.)을 획득하게 된다. DISCIPLINARE DI PRODUZIONE DELLA SPECIALITA' TRADIZIONALE GARANTITA "PIZZA NAPOLETANA"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이 문서는 재료부터 크기, 레시피, 결과물까지 AVPN을 중심으로 정립된 나폴리 피자 레시피의 거의 전부를 규격화하고 있다.[1] 이후 이는 유럽의회에 등록되고[2] 이제는 유네스코에 문화재로까지 등재되었다.

물론 이러한 나폴리 피자 부흥운동이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당장 왜 수많은 협회들이 난립하고 있었겠는가. 또 전통 나폴리를 고수하려는 입장에 앞서 가스 오븐을 도입하는 등 현대 기술을 도입하려는 시도 역시 꾸준히 있었다고 한다.[3] 그러나 공업규격부터 EU 규격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피자의 표준화 작업은 피자 나폴레타나의 품질 하한선을 그음과 동시에 지역 재료의 사용, 그리고 마리나라와 마르게리타라는 기본 형식의 확립 등 피자 나폴레타나의 기본 이념을 문서화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


  1. G.U. Numero 120 del 24-5-2004. pp. 58-60. ↩︎

  2. 2010 O.J. (L 34). pp. 7-16. ↩︎

  3. Antonio, D. D. (2. 7. 1997.) Ha Un Marchio la Pizza Napoletana DOC. La Repubblica. ↩︎

게시글에 대한 최신 알림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