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쁘아 뒤 이부 - 2022년 겨울

레스쁘아 뒤 이부 - 2022년 겨울

게시글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의 벽에 부딪혔다. 1. 레스쁘아를 다루는 게시글이 2022년 유의미한가, 2. 만약 그렇다면 EATS로 분류할 것인가 DINING으로 분류할 것인가. 글이 게시되는 시점에서 어떤 답을 내렸는지는 추측이 되겠지만, 고민이 많았다. 사적인 목적을 겸한 식사였으므로 게시하지 않을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을 모두 미뤄두고서라도, 한 끼의 서유럽 방식의 식사를 통해 다룰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나머지를 모두 미루었다.

방문 전

레스쁘아 뒤 이부의 예약은 유선상, 그리고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예약금으로 KRW 100000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며, 캐치테이블을 통해 예약 안내가 나오고 별도의 확인절차는 없다.

요리

레스쁘아 리뷰를 작성하면서 생각한 것은, 코스 전체에 주석을 달아가는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유의미한 지점들만을 짚어가면서 정리해보도록 하자.

Soupe à l'Oignon Gratiné
Escargot à la Jurassienne
Baguette Petite

가장 먼저 이야기해볼 지점은 레스토랑의 얼굴이다. 십 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며 자연스레 떠오르는 메뉴가 몇 가지 자리잡은 것들, 그리고 전체를 감싸고 있는 기본인 빵에 대해 생각해보자. 양파 스프로 대표되는 레스쁘아의 간판 메뉴들은 이곳의 요리를 적절히 소개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음과 동시에 실행에 있어 흔들림 역시 적다. 그뤼에르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형식미를 갖추고 있음과 동시에 사소한 요리에 조금을 덧대어 특별하게 만든다는 실행의 컨셉트 역시 쉽게 납득 가능하다.

부러지지는 않았으되 불만 많은 지점은 빵이다. 허여멀건했던 십 년여 전의 빵에 비하면 진일보했으나 요리 전체를 감싸기에는 역부족이다. 껍질이 만족스럽게 맛이 들지 않았음에도 속은 지나치게 건조하도록 구웠다. 밀가루나 미생물의 재미 역시 찾기 어려웠다. 기본으로 버터가 아닌 향이 강한 오일을 제공하는 것이 빵의 모자란 풍미를 대신하기 위함은 아닌가. 가혹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다른 지역도 아니고 프랑스의 기본 빵에 대해서는 더욱 높은 수준이 요구된다. 요청하지 않으면 빵 바구니를 치워버리는 서비스는 서울의 /식전빵/ 문화를 탓하겠다.

Mousseline de Poisson à la Sauce Nantua; Langoustine

고전적인 레시피에 현지의 사정을 곁들인 요리로는 유럽민물가재(écrevisse) 대신 민물고기를 써서 빚은 낭투아식 무슬린이 언급할 가치가 있다. 본래 낭투아는 가까운 곳의 물웅덩이 Lac de Nantua의 풍부한 가재를 취할 수 있는 곳이고, 따라서 낭투아식 요리인 이 레시피는 가재를 위해 영점이 설정되어 있다. 게 유사의 단맛, 그리고 새우보다는 두터운 껍질의 향기를 살려야 하는데 해당 재료 없이 문법만 재현하려니 성공에 이르지 못한다. 단순한 대체보다는 더욱 적극적인 변형이 필요해 보였다. 살과 껍질이 하나의 연속적인 선과 같은 운율을 이루어야 하는데, 무슬린의 조직은 열심히 빚었으되 맛은 재료를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강하게 느낀다.

Carré de Côte d'Agneau à la Caponata

그러한 기대가 가능하다고 느낀 요리는 이 쪽, 양갈비였다. 다진 허브에 감싸 굽는 뻔한 형식을 아주 살짝만 비틀어냈는데 화사한 향과 건조한 표면이 만들어내는 변주가 즐겁다. 짠맛에 걸맞는 단맛을 야채에 일임한 구성의 균형 역시 훌륭하다.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하는 경우보다 확실히 건조하지만 불만 있을 정도는 아니다. 스스로가 지향하는 목표점에 비추어 최소한 이상을 만족하는 요리는 이런 쪽에 있다.

Baba au Rhum

디저트는 국내의 현실은 반영한 듯 절망에 가깝다. KRW 16000의 바바에 영광의 캡틴 모건 스파이스드 럼이 퍼부어지는데 때려부은 바닐라 향이 다른 뉘앙스를 모두 밟아 죽이는 당해 럼 자체도 불만스럽고, 그것의 선택 그 자체로 이미 이곳의 디저트 주방에서 무슨 결정들이 일어나고 있을지 보이는게 있지만 진정 문제는 콘셉트다. 지금 상태에서 럼을 포스퀘어의 것으로 바꾼다고 해도 이 디저트에는 좋은 평가를 주기 힘들다. 적절하게 구워진 바바 반죽에 럼을 즉석에서 적시는 방식인데, 뒤카스의 오마주라는 생각은 들지만 열화판이다. 적절히 적셔질리 만무하지 않은가? 경력이 이만큼 쌓인 요리사라면 뒤카스의 바바 오 럼의 의미를 알텐데도 이런 실행을 방관하고 있다는 점은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메뉴판의 디저트와 제공 가능한 디저트가 달랐던 점을 보면 디저트 주방의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소비자의 영역은 아니다.


총평: 레스쁘아의 요리는 약간의 재미를 더한 전형적인 음식들을 추구한다. 에스코피에 요리책이나 라루스 가스트로노미크를 연상케하는 메뉴에 현지 사정에 따른 변화, 요리사의 주관에 따른 변화 따위가 가미된다. 어떤 것은 비교적 성공적이며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다.

고전이라고 부를만한 요리들이 차례대로 자리잡지 않은 채 곧바로 파인 다이닝의 단계에 오르게 되면서 생긴 문제라 생각하고, 따라서 이곳만의 문제 역시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유사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곳들을 생각해보면 문제가 적은 편에 가깝다. 정말 요리책 레시피 따라하기 수준이면서 소비자가 모르길 바라는 깜깜이 식당들을 떠올려보면 이곳은 완벽해 보인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격차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례사를 쏟아내고 끝낼 수는 없는데, 스스로 비스트로로 이름지었지만 비스트로노미를 표방하는 젊은 가게들의 난립 속에서 레스쁘아는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파인 다이닝에 가까운 레스토랑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인당 KRW 100K+의 가격, 막대한 양의 크룩 등 레스토랑 스스로도 가볍고 저렴한 분위기와는 이제 가까워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실행이 따라와야 하는데, 그 자리에 채워져야 할 요리사의 무언가는 충분하지 않아보인다. 조리는 안정적이되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도록 세밀하지는 않으며, 레시피를 통해 어느정도 생각을 공유할 수 있지만 충분한 숙고가 있다면 더 나은 해답이 있을 상태에서 멈춘 느낌이다. 사소하게 고민해볼만한 요리부터 치명적 결점이 있는 것까지 느낌이 제각각인데, 극복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서비스:

가격: 점심 코스 KRW 75000부터, 저녁 코스 KRW 120000부터. 음료 제외 KRW 150000~200000이 적절하다.

음료: 샴페인을 제외하면 급격히 비좁아지는 역피라미드형. 노마를 떠올리게 하는 수준의 보르도 제외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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