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멘 - 어분과 다대기
첫 인상부터 묵직한 스프의 농도가 느껴진다. 마치 국물 속에 가득 찬 진한 풍미가 입 안을 사로잡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 중심에 있는 돈코츠는 약간 의외다. 단독으로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조미료 역할로 스프의 배경을 받쳐주는 느낌이 강하다. 주인공을 기다리는 조연처럼, 돈코츠는 중심에 서지 않고 다소 뒤로 물러나 있다.
하지만 이 라멘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간에 어분을 풀어 먹으면 감칠맛이 한층 깊어지며 약간의 염도도 추가된다. 등푸른 생선의 풍미가 섬세하게 스며들어 스프가 점점 더 풍부해지고 입맛을 당기는 요소로 작용한다. 어분이 풀리면서 스프는 점차 완성에 가까워지지만, 이상하게도 그 완성은 다가올 듯 말 듯 멀어지는 기분이다.
차슈는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그 존재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이 될 것 같으면서도, 살짝 물러서며 조화를 이룬다. 차슈와 스프가 만나며 완성되는 순간을 기대하지만, 그 순간은 끝내 오지 않고 그릇은 텅 비고 만다.
라멘의 전형의 양식을 떠올려보면, 결국 양을 늘린다는 국물 요리의 만트라에서 절정을 장식하는 것은 토핑이다. 결핍의 상황, 육식에 대한 욕망의 현현. 물론 질감의 변형을 넘어선 초월의 문법으로서 국물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짠맛은 물론 단맛까지 훌륭하게 머금은 달걀과 푹 절여지고 푹 태워진 차슈에 취하려던 도중 나는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고 만다. 이거 라멘에 다대기 푸는 격 아닌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다대기를 띄운 채로 제공되는 국밥의 양식은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다대기를 푼다고 해도 국물과 함께 삶음의 만트라를 공유하는 건지는 그에 호흡하지 못한다. 순대국부터 하동관식 곰탕에 이르기까지, 국밥집의 인기몰이꾼은 양념장과 깍두기가 된다. 로라멘의 토핑은 조미가 강한 편이 아님에도 어분을 통해 극적으로 조미의 느낌이 상승하는 스프와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공명한다. 바라던 끝에 닿지는 못했지만, 그 흐름이 즐거웠다. 무언가가 조금 더 강했다면 문래동이 쾌락의 목적지가 될 수 있었을까. 더 강렬한 조미의 기회, 더 강렬한 고명의 기회, 또는 더 강렬한 음료의 선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