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쏘 1924 - 프로슈토 루꼴라 피자
로쏘 1924를 이전에 이렇게 다룬 바 있지만 생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괜찮은 식당이라고 생각한다. 나폴리에서 오래 피자를 만든 명인의 권위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적당히 푹신하고 소화 잘 되는 가운데 잘 달군 토마토의 맛으로 한 끼를 행복하게 떼울 수 있다. 문제는 여럿이서 갈 때인데, 여러가지를 먹는데 더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내게 로쏘 1924의 피자는 이제 타인의 세계관을 들여다보기 위한 음식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놓고 주저앉아버리고픈 음식이 되었기에 내게는 반갑지만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타의로 고른 반쪽이 이번에는 루꼴라와 프로슈토였다. 분명히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루꼴라로 리큐르도 만들 만큼—Rucolino라고 부른다— 범용성 있는 식재료이지만(애초에 아르굴라가 아니고 우리가 지금 루꼴라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파스타의 문법-풀리아 말로는 con la Ruca-과는 사뭇 다르다. 부드러움과 잘 소화됨을 첫째 요소로 꼽는 나폴리 도우 스타일에 사각사각한 루꼴라는 자신의 섬유질만으로 쉽고 간단하게 텍스처의 대비를 이루어낸다. 나물이나 쌈야채 등 이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즐거운 감각이고 짠맛의 염장육과는 당연히 더 어울린다.
하지만 이 피자를 마르게리타나 마리나라와 같이 전부 한 판 먹는 설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아니라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사실 루꼴라의 뚜렷한 풀내음과 사각거림은 분명 다른 지방과 짠맛의 존재가 전제되었을 때만 빛난다. 프로슈토가 그 역할을 하긴 하지만 프로슈토는 간고기에 라드를 넣고 만드는 모르타델라의 경우와는 다르게 이로 끊어내는데는 상당한 무리가 있는데, 결국 한 입 크게 우겨넣는 것만이 해결책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실패했을 때 피자의 공백이 드러난다. 이탈리아에서는 종종 눈에 프로슈토가 붙었다(avere il prosciutto sugli occhi)는 말을 하는데 꼭 여기에 쓰려고 있는 말처럼 느껴졌다. 실은 쉬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쓰는 관용구인데 참으로 그렇지 않은가. 초기 주자들이 내세웠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분명 이 프로슈토와 루꼴라 피자는 한국에서 유독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아직 우리는 그 다음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이 이 형태를 좋아하는 이유가 극대화된 형태나, 단점을 보완한 형태를 만나볼 때도 되었지 않았나? 유사한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살시차 프리아리엘리의 경우 이런 형태로 나오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 사이의 간격을 아무도 매우고 있지 않다.(물론 프리아리엘리의 경우 통조림을 따서 쓴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