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mann’s - 전설의 바
칵테일 문화는 누가 뭐래도 가장 미국적인 문화이지만, 미국 본토의 전통에서만 발달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칵테일 문화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뉴욕의 호텔업 성장을 빼놓을 수 없고, 호텔업 성장의 배경에는 20세기 교역의 폭발적 성장이라는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찰스 H. 베이커 주니어가 기록한 것처럼, 칵테일 문화는 미국적인 것인 동시에 세계적인 것이었다. 마닐라의 사교 클럽에서 영국령 인도 장교의 개인 저택, 파나마의 클럽하우스까지 서방 세계와 연결된 곳에는 저마다의 칵테일이 있었다. 유럽이라고 달랐겠는가? 해리스 뉴욕 바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칵테일은 이미 미국에까지 큰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며, 이탈리아는 피렌체의 보석인 네그로니, 베니스의 보물인 벨리니를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칵테일 업계는 몇 변의 격동을 겪으며 과거는 희미해졌고, 이른바 칵테일 암흑기의 시절이 도래하기도 했다. 보드카의 대두로 시작된 이 흐름은 업계의 경제적 성장과 질적 다양성 확보는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00년대 몇몇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한 크래프트 칵테일 운동이 한 번 큰 변혁을 이끌었고,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의 등장 이후 칵테일 업계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바뀌었다.
뮌헨의 호프가르텐에 위치한 슈만은 그 시간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프랑스에서 바텐딩을 배우고 해리스 뉴욕 바의 바텐더로 경력을 쌓은 슈만은 당시에는 드물었던, 창작욕과 의구심을 갖춘 사나이였다. 그는 크래프트 칵테일 운동보다 십수년 앞서 먼저 과거의 기록을 뒤지고, 검증하고, 새로운 가설을 세워나가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챈들러 김렛을 바탕으로 로지스 코디얼에 레몬을 탄 슈만식 김렛은 김렛의 이상향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우에다 카즈오의 하드셰이크 김렛과는 또 다른 방향의 탁월함을 보인다. 진과 레몬의 조합은 거의 롱 드링크만을 떠올리게 하지만, 슈만의 김렛은 레몬과 라임 사이에서 절묘한 곡예를 선보인다.
슈만의 위대함은 2000년대, 2010년대까지도 칵테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00년대부터는 마리오 질스 등 여러 후학을 양성해내며 메뉴를 독자적으로 창작하고 있지 않으며, 셰이커를 잡는 시간보다 공간 곳곳을 돌며 단골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길지만, 실내는 물론 거대한 호프가르텐에 펼쳐진 야장 구석구석까지 슈만이라는 거인의 삶이 묻어나온다. 글라스는 쇼트즈위젤과 협업하여 직접 디자인에 관여한 것이며, 음악도 직접 선곡하는 것을 넘어 피아니스트와 협업하여 슈만만을 위해 녹음했다. 사케와 일본 차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데, 교토에서 본인 명의의 티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 수확부터 덖고 블렌딩까지 모두 슈만의 취향이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8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반갑게 웃으며 맞이해주는 이 남자. 인간으로서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