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드라 - 견해변경
세드라의 케이크를 나쁘지 않게 먹어왔다. 때때로 입장대기가 있었기에 대부분 글로 남기지 않았으나, 내게 있어 세드라는 최소한을 보장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세드라는 서울의 열악한 과자점들에 비해서도 명확하게 '저점'이 낮은, QC를 전혀 하지 않는 수준 낮은 과자점이 되었다. 제과기능장이니 명장이니 걸려있는,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빵과 과자로 가득차있는 공간들과 통하는 바이브가 있다.
선예약 후생산제로 돌아가는 기간 한정 제품들은 어찌저찌 굴러가고 있을지 몰라도, 매장에 견실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여행용 과자들의 상태는 처참했다. 틀 안에 정확히 밀착하지 못해 표면이 박살나버린 카늘레는 보자마자 "Crooked"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특정한 감상을 떠올리게 하는게 예술이라면 그 강도에 있어서 어떤 훌륭한 식사보다도 효과적이었다. 다만 그 내용이 스스로의 부끄러움이라는 점이 문제. 지난번 최저점을 받았던 「아꽁뜨」의 카늘레마저도 이곳의 카늘레에 비하면 수려한 자태와 훌륭한 조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이는 단지 샘플 부족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구매한 제품 단 하나가 아니라, 이날 진열된 모든 제품이 그랬다. 파운드 케이크 반죽의 점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지만 여기까지 글을 밀어내는데 나는 이미 내 감정을 전부 소모했다.
이 참사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실패한 과자 이상이다. 유리창 너머의 결과물은 뻔한 봉급을 받고 고용되는 현장 직원들의 문제도, 그들에게 주어진 레시피의 태스크 문제도 아닌 책임자들, 그리고 그 꼭대기에 있는 셰프의 부재라는 문제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하나도 아니고 한 더미를 쌓아둠으로서, 더 이상 자신의 가게에 무엇이 팔리고 있는지 신경쓰지 않겠다는 선언이 공표된다. 결국 또 하나의 그런 가게다. 업계 종사자들, 그리고 제과제빵 투어리즘으로 대표되는 시각적 소비만을 위한 가게. 선예약 제품 혹은 오픈런이 요구되는 소량 생산품 소비자와, 그렇지 못한 소비자는 다르게 대우받고 가게는 그것에 만족한다. 어차피 전자가 후자를 지도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후자의 익명의 대중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 그곳에 일상의 단맛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