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텐더 - 셰이크의 이유
큰 틀에서 섞는다는 과정이 칵테일을 만드는 가장 고전적인 이유이다. 나는 종종 빵 반죽을 떠올리는데, 칵테일에도 같은 범주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셰이크한 음료의 이상향에 대해서는 제각기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겠지만, 과정에서는 모두 동일한 원리를 이용한다. 온도를 낮추어 줄 수 있는 얼음과 음료를 빠르게 접촉시켜 음료는 얼음에게 열을 빼앗긴다. 반대로 얼음은 표면으로부터 물을 해방시켜 음료를 희석한다. 이 두 가지를 축으로 삼아 원하는 만큼 음료의 온도를 낮추고, 그 과정에서 원하는 말큼 가수(加水)한다. 하지만 셰이크의 냉각 효율은 썩 좋은 편이어서 그 간격에서 찾을 수 있는 값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일정 시간 이상으로는 온도는 더 내려가지 않는다는게 센서를 달아 측정한 결과이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사정이 개입한다. 바로 기체이다. 음료를 흔드는 과정에서 미세한 공기 입자들이 혼합된 덩어리로 빨려 들어간다. 특정 성분이 포함된 재료를 사용할 경우 이러한 공기 포집능력이 시각적으로 확인될 정도이다. 예컨대 펙틴, 혹은 알부민 등이 포함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라모스 진 피즈는 가장 극단적 예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셰이크 칵테일을 네 가지 정도의 잣대로 바라보게 된다. 첫째로 가장 기본적인 것, 섞이지 않는 재료들이 얼마나 고르게 섞여있는가? 둘째, 목표 온도는 맛보기에 만족스러운가? 셋째, 음료의 맛의 밀도가 적절한가? 넷째, 음료의 입 안에서의 질감mouthfeel이 좋은가? 마지막을 논하지 않고서는 좋은 셰이크를 하기 어렵다.
물론 이 액체 내의 미세한 기포에 관한 정보는 오늘날에도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어떻게 결과물에 닿을지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 그러한 시도 자체를 부정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공기가 풍성한 음료를 만드려면 셰이크 방법이 아니라 레시피에 특정 성분을 더하는 식으로 대처하는게 현명하다는 주장 또한 일리는 있다.
그러한 고민 가운데에서 마신 여느 날의 칵테일 중 두 잔은 생크림을 사용한 종류였다. 두말할 필요 없이 셰이크로 제조한다.
브랜디 알렉산더와 그래스호퍼. 레시피의 많은 부분이 겹치지만 브랜디 알렉산더에서는 셰이크의 이유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일단 크림의 지방이 풍성해도 그에 걸맞는 풍미가 결정적인 수준에 이르지 않아 브랜디로는 부담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은데, 끈적한 액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입안에 들이차는 음료의 경험에서 향이 핵심을 쥐고있는 코냑의 향을 찾고 있노라면 크림과 코냑 모두 이 방법으로 즐기는게 과연 통하는 방식인가 의문이었다. 카카오 풍미를 개선한 크렘 드 카카오같은 경우도 영미권에서마저 여전히 실험 단계라는 인상이므로 이 땅에서는 바랄 수 없고, 그렇다면 브랜디 알렉산더는 서울에서 존재할 이유를 대기 어려운 레시피가 되고 만다.
그에 반해 그래스호퍼는 매우 선명한 성공이었다. 순식간에 입안에 페퍼민트의 자극이 가득차고 이내 단맛이 들이닥친다. 지방과 단맛으로 즐기고 페퍼민트의 화사함으로 피로를 닦는다. 마치 입안에서 잘 녹는 좋은 아이스크림과 같이 아슬아슬한 상태에 인위적으로 도달한 음료는 영하 두 자리수에서 노니는 아이스크림과는 또 다른 세계에서의 즐거움이다. 게다가 아이스크림은 이렇게 도수가 높지 않으니까. 모로코식 민트 차와 함께 민트를 마시는 가장 현명한 방법들 중 하나가 아닌가. 왜 만드는지를 알면 어떻게 만드는지는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좋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밤이 익어갈 무렵 시계는 22시를 가리키려 하고 있었고 나는 헐레벌떡 귀갓길에 올랐다. 언젠가는 다시 마시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