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텐더 - 모스코 뮬, 가루
포 시즌스에서도 가루를 뿌린 칵테일을 마셨다. 그러고보니 그 이전에도 또 다른 방식으로 가루를 뿌린 잔을 입에 댄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가루를 뿌리고 있자니 이 가루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걸 마실 생각은 없었다. 요새 날씨에 가장 생각나는 술이라면 잘 빚은 탄산을 머금은 라거 맥주와 스파클링 와인도 있겠지만 쥴렙도 있다. 그렇다. 쥴렙이 불가능해서 쥴렙처럼 생긴 모스코 뮬을 골랐을 뿐이다.
가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산업적 기준으로 가루란 1,00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크기를 가진 개별 입자를 뜻한다고 한다.1 그 자체로는 powder라고 자주 부르지만, 이렇게 부르는 경우 대부분은 액체 등에 희석하는 식으로 가루-스러움을 없애 사용하는게 보통이다. 이는 대부분의 가루들이 가지는 성질이기도 하다. 예컨대 육수를 내는 치킨 스톡 파우더부터 소스 등의 점도를 유지하기 위해 쓰는 타피오카 전분 파우더, 그리고 밀가루까지 항상 가루들은 액체, 주로 물에 희석된다. 그러나 어떤 가루는 액체에 섞지 않고 단지 흩뿌려진다. 이 경우 dust라고 한다. 대개 가루가 뿌려지는 음식이나 음료는 표면에 충분한 액체, 혹은 온도 등 환경이 조성되어 있으므로 가루는 빠르게 그에 흡착하지만 젓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 한 깊이 침투하거나 녹아 사라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가루를 뿌리는 행위는 대부분 시각적으로 하나의 층이 더해진 상태를 연출한다. 음식을 맛볼 때에도 자연스레 가루는 맛에 있어서 별도의 층과 같이 기능한다. 예컨대 크림스프 위에 후추를 고루 뿌리고, 섞지 않은 상태에서 맛보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숟가락 위에서도 후추는 여전히 스프의 표면에 위치하며, 윗입으로 숟가락을 눌러 둥근 바닥을 누르며 빼 입안에 액체를 뽑아냈을 때까지도 후추는 여전히 위를 바라보고 있다. 가루는 입안의 따스하고 습한 공기와 만나 가벼운 향기물질을 발산한 뒤 입안에서 액체가 뒤섞이는 동안 입안 곳곳에 부딪히며 신경계에 향을 전달하게 된다. 후추-스프의 절대적 비율은 같더라도, 가루를 잘 섞었을 때와는 다른 순서로 맛을 느낌에 따라 다른 인상을 빚을 수 있다.
이렇게 가루를 뿌려냄으로서 우리는 한 입의 경험 안에 시간차를 빚으면서 서로 다른 맛을 의도한 순서대로 느낄 수 있게 함으로서 맛을 설계하는데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표면을 덮는 조리방식을 응용해 음식을 맛보기 전 피어오르는 탑노트를 변주할 수도 있다. 가루로 덮은 음식에서는 아래보다는 위의 향기가 나기 마련이고, 첫 입 역시 가루의 맛이겠으나 그 아래가 순서대로 흘러들어오면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 혹은 그 반대로, 아래의 음식이 익숙한 것이라면 가루로 먼저 놀라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가루는 단지 뿌린다고 능사가 아닌데, 사람의 입은 씹을 만큼 크지 않지만 마실만큼 입자가 충분히 작지 않은 것을 입에 넣으면 불쾌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음식의 종류에 따라 큰 편차가 있지만 입자의 크기가 100마이크로미터 이상이 되면 사람들은 모래알같은(gritty), 거친(coarse) 같은 평가를 내린다. 물론 이는 가루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유체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이다. 어떤 초콜릿이 목이 막히고, 어떤 아이스크림이 서걱서걱한 이유 역시 이곳에 있다. 그러나 기타 조성에 따라 변수가 많은 이러한 유체와 달리 가루 그 자체라면 당연히 입자가 클수록 긍정적이기는 어려우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두 표현은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불쾌한 감정을 대변하고 있으며, 먹거리로서의 가루 자체가 표면적을 극대화하여 빠르게 가진 맛을 방출하는 임무를 띄고 있음을 감안하면 입자가 커야 할 이유는 떠올리기 어렵다.
그래서 가루를 뿌린 모스코 뮬은 어땠는가? 입자의 크기보다도 두드러지는 지점은 가루가 기대한 것처럼 입안에 쓸려들어오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분명히 강한 삼(蔘) 향이 코를 찔렀는데 팔레트에서는 통상의 진저 에일 정도의 강도를 보여줄 뿐 부풀어오른 기대를 끝내 삼키지 못했다. 많은 가루들은 액체를 따라 입에 흘러들어오기보다는 표면에 부유하거나 얼음에 흡착해버렸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황동빛 잔과 함께 온도에 기대어 편하게 마시다보면 생강뿌리의 향이 마치 노새의 뒷다리처럼 걷어찬다고 해서 뮬(Mule)인데, 외려 표면의 가루가 연출하는 첫인상덕에 자연스레 마시는 이는 가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텝을 밟으며 링에 오르게 되고 이 모스코 뮬이 전하는 타격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못했다.
모스코 뮬은 그 자체로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고 생각한다. 여느 칵테일이 그렇듯이 모스코 뮬 역시도 주류회사의 홍보용으로 개발된 레시피이기는 하지만, 같은 처지라도 마티니가 왕좌에 오른 것을 생각해보면 그 타고난 신분이 한계는 아니다. 다만 모스코 뮬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 마티니 역시 과거의 레시피와 현재는 결코 같지 않다. 보편적인 인상으로 이어질 뿐. 모스코 뮬의 보편적 인상은 무엇인가. 단맛으로는 진저에일-미국의 경우는 진저비어-, 신맛으로는 라임이라는 추상적 틀이다. 여기에 기주는 보드카지만 생각건대 필수적이지는 않다. 하여간 주당산의 세 기둥 위에 생강이 가진 매혹적인 향을 어떻게 연출하는게 목적인 그런 음료. 그러나 특히나 뿌리, 뿌리줄기 캐먹는 문화로는 여느 세계에 뒤지지 않는 우리로서는 더욱 까다롭게 평가하게 된다. 근대 유럽에서는 커피를 마실 팔자가 못되는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치커리 뿌리, 민들레 뿌리를 달여 마셨지만 우리는 둥굴레와 생강을 지금까지도 맛으로, 건강으로 달여 마시며 칡처럼 비교적 덜 맛있는 뿌리는 블렌딩 차도 만들어 마시고 홍삼과 같이 독자적인 뿌리 가공품도 있으며 달이기만 하는게 아니라 즙도 짜고 무쳐서도 먹는다. 그런 우리에게 현재의 모스코 뮬이 과연 만족스러운 음식인가 하면 그렇다고 하기가 어렵다. 과연 식물의 모든 맛에 충분히 진심인가. 가루를 뿌린 모스코 뮬은 그 의문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아직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음료였다. 애석하게도.
1: British Standards. Glossary of terms relating to particle technology. BS 2955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