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베이글 - 새삼스러운 베이글
새삼스럽다. 익숙한 것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그런 점을 발견했을 때 쓰는 표현이다. 식물을 본딴 말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그래, 새삼스런 이야기를 해보자.
나에게 빵을 고르는 여정은 참으로 진부하다. 독자 여러분께 하소연할 일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나에게는 꾸준한 빵의 공급이 필요하다. 종류는 크게 가리지 않아 반죽을 쑤어 구웠다면 대부분 통한다. 다만 지나치게 단단해서는 안된다. 개인적으로는 빵의 껍질crôute이 전하는 고소한 풍미를 사랑하지만 절제가 필요할 때가 있다. 곁들임으로 단백질이나 풀 따위와 훌륭하게 어울려주어야 한다.
이런 빵은 세계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아랍 문화권에서 널리 먹는 플랫브레드에 가까운 빵부터 이탈리아의 치아바타는 서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드시 밀가루와 물에서만 노닐 필요는 없다. 커피와 곁들이기 그만인 크루아상이나 일본식 식빵, 심지어는 어린시절 빵이라고 하면 먼저 떠올렸던 소세지를 끼워 자른 빵(어떤 사람들은 이 빵을 평가절하하면서도 반죽을 입혀 구워내는 고깃덩이에는 찬사를 보내는데, 이제는 뺑 드 에피라고 부르자. 그들이 더 이상 천대하지 않으리라!)도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그러나 어떤 것에도 아주 주저앉지 못했는데, 단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일까? 불만족에 대한 갈증때문이었을까?
이 베이글은 그렇게 무수히 지나간 빵들 사이의 편린이다. "사워도우 베이글"이라니, 몇 년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빵임에도 여전히 명쾌한 해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베이글하면 떠오르는 뉴욕과 사워도우의 도시인 샌 프란시스코. 가게의 냉장고에 무화과 쨈을 보면 샌 프란시스코가 맞기는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빵에 대한 고민은 남는다. 애당초 서울에서 베이글은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빵은 아닐까?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베이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베이글들은 사이사이에 끼우는 것들이 늘기만 하는 듯 하다. 야채에 치즈, 저민 햄까지 잔뜩 끼운 베이글을 보고 있자면 속이 턱 막힌다. 그런 베이글도 필요하긴 하겠지만 과연 가격이 정당하지 않다. 어쨌거나 의도한 바인지는 몰라도 그런 경향에서 조금 덜한 방향으로 살아남는 곳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용서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당장 코스트코에서 12봉 베이글을 구매하는데 약 1만 원이 조금 안되게 드는데, 이곳의 베이글은 6+1개를 구매하면 개당 2천원에 동전 보탠 꼴이 된다. 뉴욕에서 아인슈타인 베이글(플레인이 $1.99)을 사먹는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고 국내의 던킨 도너츠(플레인 KRW 1900)에 조금 얹는다고 생각하면 좋다고까지 할 수 있다. 코스트코 베이글은 미국 던킨(플레인 $0.99)과 견주어야 한다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거나 존재하고 있다. 던킨 도너츠와 달리 가격차별을 하지 않고 존재해버린다. 그렇다면 이제는 마주한 현실이다. 베이글에게 가격은 특히 중요한데, 베이글은 거의 매일 먹을 것을 가정하고 만드는 빵이기 때문이다. 베이글에 크림 치즈를 발라주는게 얼마나 바가지인지 계산하는 글 따위가 존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운전자들이 유가의 십, 일의 자리수를 따지는 것처럼 기분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제품이기 때문에 나는 그 간격에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랜차이즈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가격이 네 자리수라면, 초콜릿 코팅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물론 이런 방식일 필요는 없다)
SF 베이글의 베이글은 이름같은 특징만큼은 지니고 있었다. 사워도우의 향이 풍긴다. 벌써 오 년 여를 버텼으니 이제는 나름의 개성으로 존중해도 좋다. 베이글의 겉은 불만 없는 수준으로 잘 익어 봉지에서 빵 향기를 물씬 풍긴다.(몰트 시럽의 도움을 받은 듯 하다) 다만 고민스러운 지점은 있다. 베이글 하나를 물다 보면 가끔 타공이 지나치게 커 베이글을 상징하는 쫄깃함chewiness에 구멍이 나는 경험을 한다. 베이글을 뜯지 않고 푹 무너지는 순간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상실감이다. 다른 빵에서는 흔히 반갑게 맞아드는 요소이지만 베이글에서는 일반적으로 반가운 요소가 아니기에 기타 다른 의도를 읽을 수 없는 바, 제조 과정의 흠으로 추정케 한다. 물론, 반죽의 비율에 따라 쫄깃함부터 좀더 빵스러움bready을 추구하는 것은 주방의 자유다. 다만 실행이 있다면 그 의도가 드러나야 하는데 나는 의도를 읽을 수 없었다.
시중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베이글-덜 익었거나, 반죽부터 잘못되어 서걱서걱하거나, 풍미가 텅 빈 종류에는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내가 생각하는 베이글의 일상 속 위치에는 꼭 맞지 않는다. 반드시 스즈키 이치로의 피자처럼 기계적으로 같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매일을 고려하여 만드는 음식은 대단한 생각이나 깨달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기술적인 탁월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빛낼 수 있다. 대단히 새로운 지식이나 놀라운 재료의 사용 따위가 아닌 끈질김이 그 미덕이다. 많은 베이글들이 코스트코의 베이글을 넘어설 수 없고, 이 곳의 베이글은 코스트코보다 훌륭한 껍질을 보여주고 있지만, 가격의 간격만큼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이 도시에 여전히 적절한 베이글이 존재하지 않는 데 대해 내가 지불하는 프리미엄일까. 하지만 이 도시에서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이 빵의 위치는 일상 속, 무심경하게 데워내어 칼로 흰 치즈에 연어나 저민 햄 따위를 끼워 뜯어먹는 곳이 자리라고 생각한다. 완성된 요리를 위한 재료의 성격을 지니며, 일상을 지탱하는 의식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빵이 "가끔 먹어도 좋을" 요소를 내비칠 때 나는 의심을 보낸다. 특별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덜컹거리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