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ature Dishes That Matter, Phaidon, 2019
마리 앙투안 카렘, 알랭 샤펠, 폴 보퀴즈, 피에르 가니에르, 미셸 브라, 조엘 로부숑, 알랭 파사르와 알랭 뒤카스...
그들의 이름이 왜 시대를 지나도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고있는 사람은 한국어권에 확실히 부족하다. 그 이유인즉슨 우선 그들이 완전히 외국적인 인물들이며, 심지어 서울에서 영업을 하는 피에르 가니에르마저 무관심 속에 던져져 있는 등 소비의 문화와도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초에 전형적인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이 없는 상황에서 그 배경 하에 독특함을 인정받는 피에르 가니에르를 맥락을 곁들여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세계관을 집약한 도서의 번역상황 또한 절망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인 다이닝을 중심으로 하여 빠르게 근현대 식문화의 발전상을 따라가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면 이 책이 좋은 동지가 되어준다. 여러 명의 필진들이 현대 식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요리들을 기록하고 그 중요성을 논한다.
솔직히 이 책의 완성도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다고까지 본다. 특히나 아시아, 그리고 최근으로 올수록 논쟁적인 부분에 대해 손쉽게 해치우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스시를 수록할때는 스키바야시 지로의 니기리와 긴자 큐베이의 군칸을, 한국 요리로는 라연의 육회비빔밥이 수록되었는데, 전자의 문제는 전적으로 서구의 시각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후자의 경우 솔직히 현대 한식에 라연이 무슨 영향을 끼쳤다는건지 도통 모르겠다. 라연을 통해 한국의 비빔밥 문화가 진일보했나? 별 세 개에 이끌려 단지 고루 수록하고픈 필진의 욕심으로 보인다. 더 체어맨의 소흥주로 조리한 게는 위대한 요리이지만 역사를 논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르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 식문화사, 특히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살펴보기에는 더없이 좋다. 최소 세명, 네명의 필진이 공동으로 선정한 음식들은 하나도 뺄 것이 없이 오늘날 미식이라는 문화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들이다. 아르페쥬의 달걀, 피에르 가니에르의 랑구스틴, 에르메의 이스파한, 페란 아드리아의 에스푸마.. 어떤 요리들은 여전히 레스토랑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고, 어떤 것들은 유산으로서 계승되고 있는 등 대접은 다양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레스토랑 바깥에까지 영감을 불어넣은 요리들로 기억될 가치가 있다.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자꾸 열어보아야 할 책이다.
- 빅 맥부터 로이 최의 푸드 트럭, 딘타이펑의 딤섬 등 한끼 부문에서도 영향력 있는 요리들이 고루 수록되어있으나 그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파인 다이닝에 비해 훨씬 어렵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