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H. - GOODFELLAS
지난 글의 복선을 깔았다면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영국에서 온 레시피지만 "로마" 메뉴에 있는데, 사실 이날 나는 궁금증을 거의 해소하지 못한 채로 돌아왔으므로 이 글은 평소보다도 더욱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하는 성격이 강할 것이다.
「로마」 메뉴의 중심은 누가 보아도 한눈에 이탈리아의 맛을 상징하는 풍미들을 주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레또나 토마토와 바질과 같은 재료들은 독자에게도 이해하기 쉬운 기호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이 메뉴에서 유일하게 겉돌고 있는 듯 객을 고민에 빠지게 하는 메뉴가 이전에 언급한 바 있는 "GOODFELLAS"이다. 게스트 바텐딩이 어려운 요즘 시대 더더욱 그 의미가 빛나는 교류 레시피이지만, 과연 그것이 이 도시에 자리하는게 옳을까? 또 옳게 자리하고 있을까?
특정인의 오리지널 레시피는 당연히 훌륭하다면 타인에 의해 복제되고,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 당사자의 얼굴은 잊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미 케이크의 예시를 통해 이를 이해했다. 그러나 그 레시피가 30년도, 20년도 아닌 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면? 과연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는 이렇게 보편적으로 퍼지지도 않았다면, 케이크의 경우와 같이 속편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일랜드계 자본이 세운, 아일랜드 지명을 이름으로 하는 호텔에서 이탈리아인 바텐더가 한 잔 말아낸다면 그 이름으로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이탈리아 마피아를 꿈꾸는 비극적 여정을 그린 「좋은 친구들」만한 영화도 없을 것이다. 아메리칸 위스키를 기주로 해서 증류주를 두고 이어진 서방세계의 그림 한 폭이 한 잔에 깃든다. 비록 장소가 뉴욕이 아닌 런던이지만, 지중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는 이탈리아의 맛을,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의 작은 이탈리아를 떠올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레시피다. 그러나 아직 이 레시피는 고전보다는 특정인에게 귀속된 창작에 가까워서, 기껏해야 형성 중인 고전classiscus ferenda의 반열에 들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당사자도, 이탈리아도, 이민에 대한 태도도 없는 서울에서 이 레시피는 어떻게 꽃피워야 할까?
훌륭한 버번 위스키를 기주로 쓸 것을 지시하는 원작과는 달리, 다시 머나먼 땅으로 떠난 칵테일의 기주는 런던을 떠올리게 할 런던 진으로 교체되었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러나 진을 이용했기에 칵테일이 달지 않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레시피가 쓰인대로 이상일 것이라는 짐작만이 가능하다. 색을 보면 사실 진을 쓴다는 것은 오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참으로 오크통의 빛깔이 아닌가.
세부적인 지점에 있어서는 많이 다를지 몰라도 칵테일의 중심이 되는 조미의 영역에 있어서는 본 작품이 제대로 구현되었는데, 무엇보다 신맛과 함께 따라오는 카다멈의 폭발적인 공격력이 그 핵심이다. 한국 요리에서 흔히 표현되는 고추 계통의 매운맛과는 또 다른 향신료의 매운맛은 곧바로 아마로나 베르무트와 같은 반도의 술들을 떠올리게 한다.
맛에 있어서 뉴욕에서 런던으로, 다시 런던에서 서울로 왔으니 이제는 스콜세지에 대한 추억은 잠시 잊은 듯이, 강렬한 카다멈의 자극만이 차디찬 액체를 타고 온 감각을 지배한다. 청량한 가운데의 쓴맛. 사실 음료가 쓰지 않지만, 마치 그러한 것처럼 불러일으키는 착각.
이를 통해 코내트 바의 "명작선"에 걸려있는 칵테일의 재미가 온전히 전달되는지에 대해서는 짐짓 아쉬움이 남는다. 실행에 큰 에러는 없고, 맛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가운데 단순히 복제하지 않음으로서 최소한의 자세도 갖췄다. 그러나 끊어져버린 신대륙과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다시 채울 수 있을까. 잔에 가죽 끈을 묶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서도 뭇내 아쉬움이 남는다. 코파 이탈리아에서 종종 이름을 마주칠 뿐인 작은 도시 코모부터 영화의 무대가 된 뉴욕, 바의 무대가 되는 런던에 이르기까지 각자 잔 안에서 제나름의 맛, 제나름의 이야기를 꽃피우는 가운데 바로 우리의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카다멈만 해도 런던보다는 서울이 지리적으로는 산지에서 훨씬 가깝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해 논할 자리가 없고, 서울의 맛을 감히 더한다고 말하기에는 마땅히 내놓을 게 없다. 그 사이에서 바텐더들이 찾아낸 최선은 철저한 핵심 위주의 재현이었다. 마치 샌프란시스코의 「In Situ」에서 코리 리가 진행하는 작업처럼, 위대한 바들을 전시하는 것. 그러나 여긴 샌 프란시스코가 아니니 재현을 넘어선 창작의 영역이 아직 없는 것일까. 하기야 창작은 커녕 문화적 전유로부터의 두려움이 큰 도시다. 레시피에 저작권은 없다지만 인용표시 없는 인용은 그 자체로 기대도 재미도 없게 만든다.
다행히도, 혹은 당연하게도, 찰스 H.의 「GOODFELLAS」는 문화적 전유라 부를만큼 맥락에 대해 엉망이지도 않고, 오히려 평범한 맨해튼들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그 아이디어의 밝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탁월하다. 다만 본가에서는 이미 박제가 되어버린 명작을 관람하기 위해 레시피가 고정되어 있다면 이곳에서는 더욱더 큰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중심이 되는 풍미들은 하나하나 쉬이 이해되지만 새로움 혹은 반전의 부재에 아쉬움을 느낀다. 코내트 바에 가지 못하는 오늘날 이 한 잔은 위대한 값어치를 지니지만 하늘길이 열린다면 곧 빛을 잃지 않을까 나는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