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of the Cocktail, Clarkson Potter, 2021
시카고의 「BAR Kumiko」에 가본 적은 없지만 대강 가봤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이미 전부를 보여주고 있는 덕이다.
칵테일에 대해 잘 모를 때 정말 칵테일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영미 서점이나 아마존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을 순서대로, 주로 업장 운영을 위한 가이드북들부터 자기네들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마시고 노는 이의 입장에서 쓸모가 없었지만 행간의 의도가 다가올 때 남다른 쾌락을 느꼈다. 어떤 행위는 왜 그 행위여야만 하는가? 글쓴이 스스로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읽다 보면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쿠미코의 헤드인 줄리아 모모세가 쓴 이 책은 표지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바 문화를 노골적으로 동경하고 있다. 어설프게 새겨진 와(和)까지, 와패니즘 바텐딩인가? 일본에 대해 영미권과는 별개로 연락 수단이 있는 이웃국가의 입장에서 이러한 서양인들의 일본 사랑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일 수도, 아니 그래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한국어권 독자에게 있어 오히려 일본 원전의 자료들보다 도움이 될 여지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유럽/미국을 우선으로 두는 가치관을 가진 입장에서 일본의 바텐딩에 대해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저히 미국인의 시각에서 쓰였지만, 저자는 일본에서 성장기를 보내 두 가지의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녀는 일본의 바텐딩을 배워야 할 지점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정확하게는 일본이 가꾸어 나간 스타일은 고전적인 미국 바텐딩에 원류를 두고 있음을 짚는다. 코블러 셰이커와 지거, 얼음 깎는 도구들은 모두 19세기 미국이 기원이지만 일본에서 발전하고 지켜지고 있는 물건들이라는 점을 그녀는 (내 예상을 깨고) 알고 있었다.
뒷부분의 창작 레시피는 바 쿠미코에 가지 않는 이상 큰 의미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읽어서 얻을 만한 아이디어도 별로 없다. 책의 절반은 무의미한 셈이니 낭비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앞부분만으로 이 책은 가치를 다한다. 모노즈쿠리니 오모테나시니 언급하며 일본의 정신을 추앙하는 부분은 과거 유교 자본주의라며 동아시아를 엉터리로 분석하던 서양 사회과학의 시각이 떠오르지만, 서양 바텐딩의 시각에서 일본에 배울 점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책으로 지식의 가교가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일본 바텐딩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이 썩 상세하다는 점인데 본인이 작성한 것보다 여느 지점에서는 더 자세하기까지 하다. 일본어 화자라는 강점을 살린 것도 있지만 각별한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비록 이 바의 시그니처는 칵테일이 아니라 카츠샌드와 트러플을 잔뜩 갈아올린 디저트가 되어가고 있지만, 사샤 페트라스케 이후 간만에 재밌는 글을 쓰는 바텐더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한국이 미국보다 팔자가 분명 나은 지점도 있는데, 결과물만 보면 이런 칵테일 분야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분명하게 앞선다. 재료가 나아서? 사람이 많아서? 돈을 많이 주어서? 내 생각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 영상으로나마 줄리아 모모세의 스터와 셰이크를 보았는데 스터는 확실히 일본 스타일로 약지만을 이용, 손목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확실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셰이크는 책에서 하드 셰이크는 디테일이 전부 갖추어지지 않으면 따라할 수 없다는 언급에 충실하듯이 손목만을 이용하는 원 포인트인데, 코블러를 사용해서 오래 흔드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본인도 알고 있지만 나머지를 채우기 위한 아이디어가 없는 점은 아쉬워 보인다. 한 손으로 흔드는 보스턴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이 정도로도 "북미 최고의 바" 타이틀을 지킬 수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