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ands Wines, 'Tenacity' Old Vines Shiraz, McLaren Vale 2019
만 몇천원인가? 거의 '마주앙'이랑 견줄만한 가격이 아닌가. 뭐가 그렇게 불만이 또 많아서 글을 쓰는가.
불만이라니. 대용량 탄산음료처럼 써먹을 수 있는 물건의 상태가 썩 좋으니 이 와인의 존재는 불행보다는 행복에 가까운 것을. 물론 가처분소득에 따라, 소비에 책정한 예산에 따라 만 원의 행복의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고 나의 경우 와인에 대해서는 그런 편이므로 다시 볼 일은 잘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 삼겹살에, 배달 음식에 간단히 곁들일 알코올을 찾는다면 이런 존재는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 와인의 테이스팅은 크게 의미 있는 수준으로 하지 않았다. 사실 INAO잔을 쓰는 것도 아니고 평소처럼 막잔으로 쓰고 있는 저 물건을 쓰는데 제대로 된 존중이 가능하겠나. 이건 신대륙의 쉬라즈다. 2020년에 병입된 물건을 바로 따버렸는데 탄닌은 이미 많지 않은 편으로, 애초에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듯 하다. 바닐라향과 짙은 과실미가 지배적이며, 독특한 리코리스나 유칼립투스향도 갖추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싸고 좋다.
혓바닥 바깥의 이야기를 해보자. 과연 잘 깎아낸 대형 와이너리의 준수한 와인이지만, 이름이 올드 바인 쉬라즈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과연 이게 올드 바인의 매력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할 수 있을까. 그 전에 왜 우리는 고목에서 난 과실을 탐내는가. Vieille vigne라는 용어가 존재하기 전에도 나무들은 늙어갔다. 그러나 이 호주 땅에서 처음으로 나무가 늙었기 때문에 좋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한 와인이 만들어졌다. 의도적으로 늙은 나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일이다. 물론, 특별히 말할 필요 없이 확실히 새파랗게 어린 나무는 아예 써먹지 못할 수준의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불명확하게 "늙었다"는 표현이 든 와인이 반대로 성공을 보장하는가. 그럴 수가. 게다가 나무가 정확히 어느정도 늙었는지도 표기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공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논거들은 설득력을 갖는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무의 뿌리가 길게 뻗어 깊은 땅에서 끌어들이는 복잡한 풍미가 더해지고, 줄어든 열매는 더욱 진한 맛을 품는다.
그러나 가끔은 사람이 시간의 숫자에 압도당해 판단이 흐릴 때를 느낀다. 종종 어떤 음식이나 술들은 50년, 100년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숫자가 등장하면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사라진 과거라는 존재에 압도당하고 말 때가 많다. 577년에 한 번씩 시간을 조정하는 장치, 두 세기 전 사람들과도 같이 숨쉬던 물. 말이야 거추장스럽게 붙지만 결국 희귀성과 소유욕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항상 우리가 가리키는 방향이 휘어지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와인이지만 판매를 위해 감싸진 이런 문구는 가는 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