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법칙, 한길사, 2017
레드 가이드 상륙 5년, 레스토랑의 철학을 보여주는 요리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데 있어 나는 심히 목마르다. 자신의 요리 철학을 집약한 시그니처도, 혹은 자신의 요리 세계를 언어화한 요리책도 없다. 아마도 「품 서울」의 책이 유일한 반론이 되겠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도서관과 서점에 보내기 위한 책이 아니었므르오 원하는 경우가 아니다. 하지만 완성된 식사를 하나의 새로운 예술 형태로 담아내고자 한다면 둘 중 하나는 필수라고 본다. 누벨 퀴진부터 엘불리까지 일종의 선언-Manifesto-을 자꾸 만드는 것도 그런데 이유가 있고, 르네 레드제피의 이름으로 레시피북보다 취재 기행문이 더 많은 이유가 그렇다.
가니에르의 요리세계는 이미 에르베 디스와의 공저, 그리고 그의 수많은 레스토랑을 통해 드러나고 있으나 아르골사와의 작업은 또 다른 재미를 보여준다. 본서는 취재진의 시각에서 그의 요리, 그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동사에서 출판된 Toutain, Grébaut 등의 서적이 연속으로 출간되지 못하여 아쉬움이 크지만, 반대로 가니에르가 서울에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덕에 한길사와 같은 큰 출판사에서 이 책이라도 내주었다고 생각한다. 몇 권의 가니에르 요리책들, 청와대 만찬 등 가니에르가 롯데호텔에 입점함으로서 누리게 된 효과는 단순한 식사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의 배움이 서울 전역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확산되지는 못한 듯 보인다. 본서가 집필된 시기는 현재로부터 조금의 시간 간격이 있어 지금 보면 새삼스러운 이야기들이 몇가지 있는데, 예컨대 역자와 한국 음식을 두고 나눈 대담이나 레스토랑 매거진의 월드 베스트 50의 무의미함에 대한 비판 등이 그렇다. 이러한 논조들은 현재 식음료 분야에서 완전히 잊혔다. 사람들은 여전히 무엇인지도 모를 가이드를 숭배하고, 립서비스 좀 보태어서라도 가꾸어보려고 했던 한식에 대한 관심은 행정부 수뇌의 교체와 함께 잠들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의 헌신으로 이런 책이 한국어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미래에 가능성은 있다. 비록 그 가니에르의 요리책들이 롯데호텔의 조리사, 혹은 본서와 같이 수입식품업자 등 업계 관계자들에 의해서만 번역되고 또 그러한 업계 사람들에게나 조금 관심을 받고 잊히지만 종이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사고로 읽어볼지 모르는 일이다. 이런 부류의 도서가 또 번역되기를, 혹은 국내에서 출판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