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나폴리 - 한국식 피자 나폴레타나
김민재와 마라도나, 푸른 빛의 폰트까지 한결같이 나폴리를 바라보고 있는 가게였는데 이런 가게를 볼때마다 복잡한 심경이 든다. 정작 나폴리의 피자 씬을 이끌어가는 이들 중에서 이들에게 나폴리란 존중해야 할 전통임과 동시에 극복해야하는 과제이기도 하지 않은가. "라 노티지아"의 엔초 코치아와 같은 20세기의 기수들 역시도 단순히 전통을 이은 것으로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추상적으로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던 전통을 글로 바꾸고 이해를 통해 피자 나폴레타나라는 음식을 한 걸음 더 보편의 영역으로 옮겨왔다는 데 공이 있다. 다음 세대의 기수라 할 수 있는 페페 에 그라니, 카를로 사마르코 2.0 등은 더욱 노골적으로 발전적 계승을 기치로 삼고 있다. 여전히 나폴리가 그들의 창작에 큰 영감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창작품은 스스로에게 귀속되지, 나폴리에게 봉헌되지는 않는다. 뉴욕의 Una나 파리의 Peppe와 같이 해외로 뻗어나간 이들에 대해서는 더할 말이 있으랴.
그럼에도 마리오네와 같이 서울의 뭇 피자 가게들은 나폴리를 전면에 내세우는데 이 때도 "나폴리 다음"을 물었는데 또 다시 그 질문 앞에 서게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프로슈토와 루꼴라 피자를 먹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결론을 만났으니 가히 따져볼 가치가 있다.
많은 피제리아들이 비앙카냐 로쏘냐 정도를 나누는 가운데(마리오네는 선택 가능, 로쏘 1924는 비앙카) 비바 나폴리는 프로슈토를 제외하고 직접 만든 햄을 올렸는데 삶아서 만드는지 루꼴라의 섬유질이나 빵 반죽의 글루텐 조직과 거의 유사한 정도의 질김을 지닌다. 다시 말해 전체가 하나로 씹히는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말린 햄 특유의 감칠맛은 전부 잃어버렸지만 텍스처의 불협화음과 형량했을 때 합일에 성공한 텍스처의 편익이 결코 작지 않다. 모자란 짠맛과 감칠맛은 토마토에 더해 통조림 올리브로 균형을 맞춘다. 수북히 쌓인 루꼴라의 압도적인 불편함이 문제인데 나름의 요령으로 해결을 본다. 포크로 몇 번 눌러준 뒤 크러스트와 평행을 이루도록 횡으로 정렬하여 안쪽 끝을 잡고 동그랗게 말아 타코처럼 먹는다. 피자 취식에서 식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불경하기는 하지만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확실하다. 말아먹는 피자의 즐거움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은 파누오조Panuozzo쪽인데, 일부러 대비되는 비앙카 종류중에서도 전형적인 살시차 에 프리아리엘리를 선택했다. 살시차 에 프리아리엘리는 서울의 피제리아들이 물 빼고는 전부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통에 만듦새의 흠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메뉴인데 적당히 잘 부풀어오른 빵 사이에 풍성한 지방과 염분을 채워 먹으니 입안 가득 만족이 퍼졌다.
비바 나폴리는 여느 피제리아들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나폴리향이지만 정작 음식을 보면 그 여느 피제리아들보다도 한국적이고, 그래서 좋았다. 주문하지는 않았지만 바게트를 피자 반죽으로 바꾼 잠봉 뵈르 파누오조-정말이다-에서는 생존을 향한 간절함이, 그리고 윗 사진의 비바 클래시카에서는 그 속에서 찾아낸 생존법의 묘한 즐거움이 돋보였다. 애초에 오소독스한 피자 나폴레타나는 넓게 보더라도 캄파니아의 전통 재료를 사용하는 독한 지역 음식이다. 풀리아나 시칠리아로만 넘어가도 다름이 감지될 정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슈토 에 루꼴라는 북부의 프로슈토를 편입한, 근대적인 의미의 피자 레시피라 하겠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한국의 흐름에 따라가는게 어찌 나쁘겠는가? 한국적인 피자를 만든다는 것이 되도 않는 고추장이니 김치니 넣는 것만이 길이 아니다. 한국의 현실에 처절하게 또 철저하게 적응하는 것이 진정 한국적인 길은 아닐까? 비바 나폴리는 그런 점에서 참으로 솔직해서 좋음 음식을 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족을 달자면 분명 직접 만든다는 잠봉은 본래 프로슈토니 모르타델라니 하는 북부식 가공육을 수용한 맥락에 어울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애초에 만드는 방식때문에라도 그 감칠맛을 대체할 수 없으니 장기적으로는 프로슈토와 견줄 수 있는 건조가공육에 대한 해결책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굳이 이곳에서 할 필요는 없지만. 그리고 메뉴판에는 "잠봉뵈르햄"따위로 쓰여있어서 뭇 네이버 블로거들이 단체로 잠봉뵈르햄이라는 단어를 외고 있는데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 같이 보기: 피자 나폴레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