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아이스크림, 본격 테이스팅 세션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대해서
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랑한다.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우유와 크림, 설탕을 비롯한 스위트너, 달걀 또는 유화제와 안정제, 그리고 말린 바닐라와 그 모두가 합쳐진 결과물을 사랑한다.
그 여느 때보다 자택 대기가 길어지는 요즈음, 쉽게 맛볼 수 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최근 몇 년새 미국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점유율 1,3위에 자리하고 있는 벤 앤 제리스와 탈렌티가 수입되면서 선택의 폭이 늘었기에, 드디어 이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왜 바닐라인가?
한국어/한국 문화권에서 종종 보는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잘 안다고 말할 때 사실 그에 대한 앎의 자리가 잘 없는 경우가 있다. 바닐라가 그렇다. 바닐라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가? 바닐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아니면, 좋아하기는 하는지.
기본적으로, 서구화가 심해지면서 바닐라는 이미 우리의 신체에 각인된 기호일 가능성이 높다. 나의 경우 서구화와 도시화의 영향을 일찍부터 받지는 않았으나, 서구인들의 경우 이미 세대를 거치며 바닐라향에 대한 기호가 입맛으로 자리잡았다. 그들의 어머니들은 바닐라를 먹어왔고, 이러한 부모의 신체에 쌓인 기호는 영아들이 모유를 선택할 때부터 영향을 준다. 서구에서는 아예 모유의 향과 바닐라의 향을 대체하는데 성공한 실험도 있을 정도이다. 이미 바닐라는 서구화된 입맛의 수 세대를 거치며 이미 존재하는 규칙de lege lata으로 자리잡았다.
바닐라 향은 기본적으로 바닐린,3-메톡시-4-하이드록시벤잘데하이드로 불리는 물질이 우리가 알고있는 바닐라의 경험의 주축이며, p-하이드록시벤잘데하이드와 바닐린과 유사한 바닐릭산이 함께할 경우 흔히 천연 바닐라로 불리는 경험과 유사해진다. 실제 천연 바닐라의 구성이 그런 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바닐라 향은 흔히 달콤한 경험을 떠올리게 만들며, 향 자체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흔히 유제품이 가질 수 있는 이취를 가리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실제 달콤한 것을 맛볼 때 바닐라 향은 그러한 경험이 마치 증폭되는 듯한 인식을 불러오며, 감각을 놀라게 하는 매운 형태의 자극들과도 어울리고 견과류, 또는 유제품과 같이 지방이 많은 식품과도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우리의 소화기관은 지방을 탐닉할 때 감각기관은 마치 그것을 바닐라인 마냥 느낀다.
이러한 바닐라의 매력에 있어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매력적인 선택이다. 전세계 각지에서 아이스크림의 맛으로 바닐라와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맛은 초콜릿인데, 같은 적도 부근을 고향으로 두는 태양열의 자손들이지만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바닐라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짙은 갈색의 외형부터 초콜릿은 자체의 맛과 질감을 가신 완성체로 아이스크림을 지배한다. 바닐라는 기존의 아이스크림, 우유를 주인공으로 하는 베이스에 오직 향만을 더할 뿐이다. 혀를 통해 초콜릿의 맛을 느끼고 이후에 취신경을 통해 그 향을 느끼는게 초콜릿이라면, 바닐라는 혀 위의 감각은 온전히 미룬 뒤 취신경만을 자극하는 물건이다. 향신료로서 천연 바닐라를 가공해도 전체 구성물질의 1%도 안 되는 부분만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데, 그 힘만큼은 어떤 거대한 과일보다도 위대하다. 바닐라는 단 맛의 가장 절친한 단짝이며, 작열하는 여름 아래서 대자연과 인류가 함께 찾아낸 보물이다.
어떤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좋은가?
우리는 오늘 딱 세 가지의 바닐라 아이스크림,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편하게 인터넷으로, 또는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만나볼 수 있는 물건들을 다룰 텐데, 그 비교를 통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란, 디저트란 어떠해야 하는지까지 이야기해볼 수 있길 바란다.
첫째로, 좋은 아이스크림이어야 한다. 좋은 아이스크림이란, 먹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크림에 대한 모사품인 만큼, 뚝뚝 끊기거나 숟가락에 저항해서는 안된다. 가는 대로 따라오되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입안에서 그대로 녹아야 한다.
둘째로,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어야 한다. 단 맛이 가장 중심이 되고 특별히 다른 맛을 더하지 않는 게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맛 구성인 만큼 단 맛을 경험하는데 방해가 있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맛은 전반적으로 진할 수록 좋을 것이다. 맛의 밀도는 곧 아이스크림의 품질에 대한 논의와 직결될 것이다.
셋째로, 좋은 바닐라여야 한다. 바닐라의 향이 잘 느껴져야 하고, 진하거나 복잡하면 더욱 선호된다. 천연 바닐라가 가진 흰색 꽃이나 견과류, 캐러멜과 같은 향을 떠올릴 수 있다면 가장 즐겁지만, 달콤한 감각이 지배하는 바닐라의 기본적인 풍미 프로필을 느끼는데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 맛보았는가?
모든 아이스크림은 냉동고에서 보관된 뒤 뚜껑을 닫은 채로 10분을 상온에서 대기하였다.
취식의 순서가 있어 시간차가 있을 수 있고, 냉동고에 비교적 오래 머문 것이 있을 수 있으나,
다시 순서를 바꿔 여러 번 맛보았다. 사진의 경우 처음 촬영된 것이 지나치게 굳어 보이는데 양해를 바란다.
취식 도구의 경우 전국민이 사용하는 베스킨 라빈스의 일회용 스푼을 새로 개봉하여 사용하였다.
1. Talenti
가장 인상적이지 않았다. 탈렌티의 명성, 그리도 오프라인 판매가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과연 탈렌티를 선택하는 것이 옳은가, 심대한 의문이 들었다.
물론, 탈렌티의 바닐라는 그 자체로 잘못되거나 피해야 될 수준은 아니다. 다만 유지방이나 안정제, 어느 쪽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흔히 비단 같다고 표현되는, 아이스크림의 이상적인 식감과는 거리가 있다.
시트러스 계열이 향이 미세하게 느껴져,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완성품의 맛을 추구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시판 아이스크림 파인트의 가격대에서, 바닐라 빈을 이용해 향을 냈을 때는 대부분의 경우 그 향이 과도해서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 기우 때문에 기회를 놓친 맛.
2. Häagen-Dazs
한국의 바닐라 맛의 표준으로 대우받고 있는 하겐 다즈는 여전했다. 두 가지 측면에서. 하겐 다즈는 높은 유지방 비율을 유지하고, 바닐라 익스트랙으로 충분한 바닐라 향을 확보한다.
바닐린과 지방, 설탕의 기본적인 궁합의 정석에 가깝도록 훌륭한 단맛을 가졌으며, 만족스러운 정도로 끈적한 질감은 성격이 급한 사람들에게도 부드러움을 선물할 수 있다. 그러나 바닐라의 향의 복잡성은 가장 떨어지는데, 짙은 우유의 풍미가 다가올 때 이는 단점이 된다. 끝맛이 썩 나쁘고, 디저트로서 입을 깔끔하게 해주는 역할로는 부적합하다. 여러모로 응용하기에 좋다.
3. Ben & Jerry's
사진이 과도하게 녹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부 다 이거보다도 녹을 때까지 반복해서 맛보았음을 다시 강조하며,
벤 앤 제리스의 바닐라는 하겐 다즈가 하겐 다즈스럽게 설정한 냉동고의 표준값을 교체할 수 있는 유력한 도전자로서 아주 훌륭하다. 아이스크림으로서 만족스러울 정도로 부드러운데 인상적인 점은 혀 위에서의 경험이다. 바닐라 빈을 깎아낸 검은 반점들은 시각적으로도 신뢰를 주지만 눈을 감고 먹어보아도 바닐라의 향이 최소한의 복잡성을 갖추고 있으며, 단맛을 만족스럽게 보좌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여러 숟가락을 먹거나, 지나치게 차게 맛보아 감각기관이 무뎌졌을 때 하겐 다즈가 지방의 느끼함이나 약간 시간이 지난 우유가 가지는 유취의 흔적을 드러낸다면 벤 앤 제리스의 바닐라는 역할을 곧잘 잃지 않는다.
그래서?
벤 앤 제리스의 바닐라가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나의 냉장고에 상주할 하우스 아이스크림이 될 예정이다. 내가 이태리제 아이스크림 기계를 사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러나 바닐라 아이스크림 자체로 보았을 때는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할 지 모르지만 경험의 향상을 위해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의 가장 기본으로, 잔재주를 통해 식재료처럼 사용할 수도 있고 다른 요리를 하고자 할 때도 스스로의 혀에 담긴 세계관에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
마다가스카르 바닐라라고 불리는 planifolia g. jackson의 풍미는 이미 벤 앤 제리스가 보여줄 만큼 훌륭하게 연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만큼,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바닐라에 대한 여정도 대한민국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당장 나의 냉장고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뿐 아니라 하프 베이크드와 같이 층을 이루고 있는 제품들도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맛보면서 이제 시작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