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ngut Clemens Busch, Marienburg Spätlese, Marienburg 2018
와인에게는 무수한 역할이 존재하지만, 달콤한 와인은 어떤 역할을 기대받는가? 클레멘스 부쉬의 리슬링은 전형적인 리슬링의 표본으로서 그에 대한 심대한 의문을 던져주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다. 모젤이나 라인가우의 유명 생산자의 리슬링에게 기대하는 맛은 어찌 생각하면 예외적으로 보아도 좋을 정도로 달다. 리슬링이라는 포도 자체는 트로켄부터 디저트까지 만들기에 따라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단맛의 바깥에 시선을 둘 수도 있다.
생각건대 좋은 리슬링은, 그 단맛의 여하에 불구하고, 배와 같은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 헥실 아세테이트, 또는 열대과일과 같이 과실이 익어가고 또 양조 과정에서 발효를 통해 발달하는 감각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거기에 더해 TDN이라 불리는 성분이 불러일으키는 페트롤륨과 같은 독특한 풍미는 독일 지방 리슬링을 다시 찾을 이유가 된다. 때로는 이러한 매력에 흠뻑 젖어있다보면 와인의 짝이라던지, 마시는 사람이라던지 그런 것들은 잊어도 좋을 정도이니까.
2018년에 병입한 와인을 2021년에 개봉하는 시점에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이러한 특징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끝맛에서 흐릿하게 감지되는 휘발유의 향이 하루를 후회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와인과 식사를 하는 것은 포기했다. 기본적으로 향의 구성을 고려하여 짝을 맞추어야겠지만, 민족대명절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식탁 구성에서는 클렌져의 역할 정도를 수행하는 증류주에 기대기 십상이었다. 산도가 강한 쪽이라면 전과 같은 요리에 맞추어볼 수 있겠으나 열정이 생기질 않았다. 흔한 짝으로는 치즈 종류가 떠오르는데, 지금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치즈들을 생각하면 그러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공동주택의 현실을 감안하면 풀보디 시가같이 음식 바깥의 선택지도 곧 좌절로 기운다.(그거 아시는가? 생각보다 어울린다. 반드시 꼬냑이나 위스키일 필요는 없다) 이쯤되면 한 쪽은 포기할 필요를 느낀다. 셀러를 위한 냉장고인가? 냉장고를 위한 셀러인가? 아니면 포기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한식의 중심이 되는 풍미에 대해서 보편적인 가이드가 존재한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장류의 발효취가 치즈에 못지 않고, 오색찬란한 나물의 쌉싸름함에도 섬세함을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몇 달을 건너뛴 외식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좋은 재료 따위 말고는 떠오르는 영감이 없다. 조리의 숙련도에 대한 평가들은 많으나 내게는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 추신 : 조리의 숙련도도 중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로 요리사를 숭배하지만 그 평가의 기준은 의문이다. 다수의 평가에서는 위대하다는(예약의 어려움이 그를 증명하더라) 곳에서도 모욕적인 조리를 보여주곤 했던 기억이 있다. 무너진 요리를 적당히 다시 붙인다거나 써는 두께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일정치 않다거나 하는 등. 그 요리사가 내 요리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참견하지 않았다만 애석한 일이다. 과연 적절하게 평가되고 있는지 나는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