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kwan's Korean Temple Food, ICP Inc., 2018
스시가 아닌 요리 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넷플릭스에서 정관스님이 나오는 영상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갱스터 출신 독일 셰프가 스님의 요리를 배우겠다고 한 이야기가 언론사에도 꽤 소개가 되었다. 우리는 언제나 서구가 주목해줄 때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한국의 사찰 음식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단편적이지 않고 썩 꾸준했다. 적어도 고추장을 구매하는 '척'을 하는 연출된 장면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그 동기가 불순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아무튼 요리계에서 이러한 화두가 던져진지는 꽤 오랜 세월이 되었다. 국내의 셰프들도 그들의 영향에서인지 아닌지 사찰 음식을 즐기거나 배우려고 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며, 한식의 정체성을 그곳에서 찾으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비록 그들의 레스토랑에서는 그런 영향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지만, 그러한 흐름은 우리에게 호기심 내지 흥미를 불러일으킬만 했다.
그리하여 「발우공양」같은 레스토랑이 생기고 또 뜨고 다시 지기까지 십 년이 더 지났다. 그럼에도 사찰음식이 라이프스타일이나 국내에서 존중받는 요리의 한 갈래로 스며들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일상의 점심 속에서 한국식 중식당을 택하듯이 사찰음식의 영향을 받은 요리를 맛보거나, 업스케일 파인 다이닝으로 스시 카운터 대신 절간을 찾자고 감히 말해볼 수 있는가? 답은 명료하다. 세계가 어쩌고 하는 수식어가 붙어도-여전히 사찰 음식은 지독한 무관심 속에 있다. 스시 카운터의 열기의 원인을 한국인의 입맛과의 유사성에서 찾는다면, 왜 사찰 음식은 유사한 입맛 가운데 냉대받는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관스님의 책을 독파했다. 한국어 서적이 두 권 더 있고 가장 최근의 작품이 이 영문본이다. 이러한 출간 작업들은 서문에도 밝히듯 하나의 프로젝트인데, 언어에 무관하게 읽을 요량이라면 나는 이 영문판이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우관스님의 손맛 깃든 사찰음식>은 거의 백과사전에 가까운 구성이고 해먹지 않고서야 의미가 없고, 해먹는 이상으로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 책은 그에 비해 조금더 셰프의 요리책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우관스님의 요리는 철저히 불자의 일상에 발맞추기 위한 요리를 표방하는데, 한국 문화에 녹아든 한 사람으로서 편견 속의 절간 요리가 아닌 무언가가 나오는 지점이 거꾸로 일상적인 음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이를테면 우관스님의 요리에는 커피나 토마토와 같은 재료가 쓰인다. 책에서는 지극히 한국적인 이유(꼭 무슨 효능 따위를 언급해야 하는가? 별로 과학적이지도 종교적이지도 않다!)를 들기는 하지만, 이러한 외산의 식재료들이 사찰 음식의 일부로 편입될 때 우리는 고민한다. 과연 우리는 반대로 사찰 음식에게 배운 것을 일상에서 충분히 대우하고 있었는가. 이외에도 요리를 완성하기 위한 부재료들, 우유부터 한천, 버터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요리는 결코 조선시대로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다. 책의 독자가 미국인들임을 염두에 둔 만큼, 미국인들에게 소개할 불자의 일상이란 무엇일까를 고민(상업적으로 아니면 종교적으로)한 결과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조금은 다른 사찰 음식을 충분히 도전해 보았는가? 내 일상에, 혹은 누군가의 일상에 어울리는 요리란 어떤 것일까? 그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오신채니 육식이니 하는 것들로부터 거리가 있는 사찰 음식의 환경이 자연스레 주는 힘은 있지만, 이는 지금 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느낀다. 자연스레 가지와 애호박, 비트나 무같은 야채나 버섯류 등이 요리의 주인공으로 자태를 뽐내는데 여전히 이런 요리를 프로패셔널의 단계에서 주목하는 곳은 정말로 많지 않다. 채식을 표방하는 곳들에서마저 대안 단백질이 주인공인 경우가 더 많고 불행한 조리 수준을 곁들이면 한층 볼만한 풍경이 되어버린다. 책에서 아무리 야채 요리법을 이렇게 잔뜩 실어도 해먹지 않을 것이 뻔하다면 다 무용지물이다. 한국의 과일과 야채의 맛에 투덜대지만서도 책에 실린 사과 말랭이같은걸 서울에서 반찬으로 만나기는 불가능에 가깝고, 부드러운 두부와 단단한 우엉을 한 요리로 만들 때 두부 표면을 바삭하게 지져내 우엉을 씹으면서 두부를 삼켜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경우는 상상에 가까운 주장으로 느껴진다. 우엉을 파인 쥴리엔(fine julien)이라고 부를 만큼 가늘게 다지는 솜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우관 스님의 몇 가지 요리는 해먹을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야말로 주어진 현실의 풍경에 적합한 요리로서 사찰 음식들이므로 모두 가정의 냉장고 내지 대형 마트선에서 수급이 가능한 재료들로 가정의 주방에서 가능한 것들이다. 책의 독자인 미국인이 처한 환경은 또 다를 것이므로 아스파라거스와 양송이, 방울 양배추 등 외국적인 식문화 속의 재료들 또한 담았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이 사찰 음식일까? 그는 자세와 태도를 견지함으로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듯 하다. 들기름이 가능하다면 유럽에서는 EVOO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고, EVOO를 사랑한다면 들기름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한다. 그렇다면 사찰 음식 책도 당연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사는 곳이 산속이 아니고 내가 불자가 아니어도 사찰 음식의 정신은 통하는 데가 있다.